백기완씨, 55년만에 평양서 누님과 해후

"헤어지는 게 너무 가슴 아파서 이별의 순간에 한번 더 부둥켜 안지 못한 게 못내 아쉽습니다"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행사 참관차 방북했다가 55년전에 헤어졌던 누님 인숙(72)씨를 만난 백기완(67)통일문제연구소장은 14일 서울로 돌아온 후에도 꿈같은 혈육상봉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듯 떨리는 목소리로 당시의 감회를 털어놓았다.

황해도 은율 출신인 백소장이 북에 어머니와 누님,큰형과 헤어지게 된 것은 45년 광복직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축구유학차 서울로 내려오고 이듬해 여동생과 작은 형도 뒤따라 월남했으나 50년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어머니,누님 등과 생이별의 아픔을 겪고 분단의 세월을 감내해야 했다.

백소장은 "처음에는 북한 당국에 의해 가족상봉 요청이 거절당했지만 같이 갔던 동료방문단원들도 백 선생의 평생소원을 들어달라고 계속 부탁한 끝에 결국 서울로 돌아오기 전날 낮에 평양 시내 한 음식점에서 누님을 만났다"고 털어놨다.

그는 "점심식사 때 누님을 만나자 마자 부둥켜 안고 울었고 누님은 우선 어머니의 타계소식을 전한 뒤 어릴적에 도토리처럼 귀엽게 생겼던 네가 왜이리 늙고 말랐느냐며 다시 오열하기 시작했다"며 눈물로 가득찬 해후의 순간을 떠올렸다.

백소장은 "꿈에 그리던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접하자 가슴 한구석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저녁식사 때는 냉면집에서 누님을 한차례 더 만나 함께 살날까지 건강하게 오래살자고 다짐한 뒤 헤어졌다"고 말했다.

급하게 방북길에 오르는 바람에 선물 준비를 하지 못해 동료 방북단원들의 도움으로 시계,목도리 등을 급히 구입해 누님에게 선물했다는 백소장은 특히 "앞으로 건립할 통일박물관에 기증하겠다"며 상봉당시 누님과 자신의 눈물과 콧물이 묻은 손수건을 품안에서 꺼내 보였다.

백 선생은 또 "방북 마지막날에는 고향을 떠나기가 아쉬워 아침에 혼자 대동강가에서 대동강 옛추억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한없이 울었다"며 당시 불렀던 노래를 되새기며 지긋이 눈을 감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