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 뉴빅뱅] 투신운용 : '불신털기 독립선언'

지난 해 대우채권 문제이후 투신운용사들은 줄곧 여론의 주목을 받아 왔다.

물론 칭찬보다는 지탄의 목소리가 컸다.개인투자자들의 의견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각종 인터넷 증권사이트에는 연일 투신운용사를 비판하는 글이 줄을 잇고있다.

심지어 "개투"라는 저속한 말이 투신운용사를 대신하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 터진 "세종하이테크 사건"은 투자자들의 가슴에 큰 구멍을 뚫어놓기에 충분했다.현직 펀드매니저가 거액의 돈을 받고 증권사직원 등과에 짜고 "작전"을 벌었다는 게 이 사건의 골자다.

펀드매니저로 대표되는 투신운용사의 신뢰가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추락할 수 밖에 없다.

이같은 위기상황은 투신운용업계의 변화를 강요했다."작되 강한" 회사로의 탈바꿈이다.

상품을 판매하는 증권사와 자산운용을 책임지는 운용사가 한 회사속에 있던 대형 투신사들은 모두 "이혼수속"을 마쳤다.

별도 법인으로 독립한 것."도덕재무장"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부통제를 통한 투명성 강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얘기다.

불투명한 운용으로는 더이상 투자자를 확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그동안의 묵은 관행을 조금씩 바꿔 나가고 있다.

올들어 두드러지고 있는 외국사들의 진출도 국내 투신운용사들의 변신을 강요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들어서는 투신운용사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수탁고 감소세도 현저히 둔화됐다.

물론 단기투자상품의 판매고에 힘입은 바 크지만 몇 개월전에 비하면 한 숨 돌린 셈이다.

하지만 이같은 변화가 아직 "변혁"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게 지배적인 평가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지 못할 경우 외국계 자본에 의해 국내 투신운용시장이 휘둘릴 가능성도 농후하다고 지적한다.

변화하는 투신운용사=그동안 투신업계에는 투신사 투신운용사 투신증권사 등 세종류의 회사가 존재했다.

한국 대한 동양오리온투신은 이중 "투신사"로 분류됐다.

운용과 판매가 같이 이뤄지는 회사여서 이런 명칭이 붙었다.

올 들어 이 세 회사가 모두 운용.증권사로 각각 분리됐다.

법률적으로는 완전히 갈라선 셈이다.

이같이 운용사가 떨어져 나옴에 따라 회사 내.외부적으로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운용사의 경우 우선 "대규모 부실"이라는 멍에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는 혜택을 누리게 됐다.

부실의 대부분이 증권사의 부담으로 돌려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회사의 가치도 높아졌다.

펀드매니저들의 주변환경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은 회사가 일정부분 판매를 책임져 왔지만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운용실적이 시원치 않은 매니저의 경우 도태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외국자본의 국내진출도 올 들어 투신운용업계에 불어 닥친 변화의 주요 대목이다.

굿모닝증권과 합작해 템플턴투신운용을 설립한 "템플턴 인베스트먼트"는 지난 7월말로 굿모닝 지분을 정리하고 독자지분으로 이 투신운용사를 경영하고 있다.

미국계 투신사인 스커더도 금융감독원에 투신운용사를 설립하겠다고 예비인가신청서를 낸 상태다.

독일계 보험회사인 알리안츠도 알리안츠제일생명 자산운용부문을 담당할 "하나알리안츠 투신운용"설립을 추진중이다.

이밖에 경영권을 완전히 인수한 형태는 아니지만 ING생명(주은투신운용) 파리바은행(동원BNP투신운용) 코메르츠은행(외환코메르츠투신운용) 얼라이언스캐피탈(한화투신운용) 등도 20%이상의 지분참여를 통해 한국투신시장에 발을 들여 놓고 있다.

호주 최대 투자은행인 맥커리도 투신운용사는 아니지만 지난 7월 IMM투자자문과 합작해 맥커리IMM자산운용사를 설립한 상태다.


투명성이 관건이다=전문가들은 투신운용사가 시급히 갖춰야할 사항으로 한결같이 "운용의 투명성"을 첫손에 꼽는다.

간접투자시장의 침체가 자산운용의 불투명성에서 기인한 만큼 해결의 실마리도 그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최근 투신협회를 통해 발표된 표준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자산운용의 투명성을 점검하는 "준법감시인"의 인사상 지위가 불안정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투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대부분의 투신운용사가 회사내부 인물을 준법감시인으로 선임한 상태"라며 "한국의 기업문화 특성상 같은 회사직원이 동료의 과오를 빠짐없이 가려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일반사무수탁회사를 통한 객관적인 펀드평가문제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현재 대형투신사들은 모두 자회사형태로 일반사무수탁회사를 거느리고 있어 펀드평가의 투명성 확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우세하다.펀드평가기관의 한 관계자는 "단기적인 이득을 위해 과거의 관행을 답습할 경우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어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투신업계의 뒤를 고스란히 따라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