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서 엿본 東西문화 스펙트럼..'몬드리안이 조선의 보자기를 본다면'

화가 정은미(38)씨의 ''몬드리안이 조선의 보자기를 본다면''(열림원,1만2천원)은 시화집같은 미술 감상서다.

딱딱한 미술사나 미학평론을 동원하지 않고도 동서양 명작들의 숨은 의미를 편안하게 전해준다.문장도 시적이다.

행간마다 깊이있는 글맛과 은유·상징의 아름다움이 배어있다.

국내외에서 10여회의 개인전을 연 그는 예술가의 눈과 작가적 감성으로 동서양 미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닮은 점이 많으면서도 근본적으로 다른 붓끝의 마술.

그 미세한 차이점을 비교하면서 명작들을 감상하다보면 그림읽기의 즐거움도 훨씬 커진다.

제목에 언급된 작품부터 들여다 보자.몬드리안은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네덜란드 출신의 미국 화가.

그의 1943년 작 ''빅토리아 부기우기''는 수직선과 수평선,그리고 청·적·황의 색면으로 이뤄진 절제미의 걸작으로 꼽힌다.

그가 조선시대의 우리 보자기를 봤다면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알록달록한 다채색의 삼각형 조각 천들을 이어붙여 큰 사각형 무늬로 만든 ''옷보''는 몬드리안보다 1백년 이상 앞서 나온 생활 속의 추상미술이다.

서양인들이 20세기 들어와 발견한 것을 이미 삶에 녹여내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직사각형의 무늬로 기하학적 미를 형상화한 ''천보''에는 스위스 출신 화가 클레의 ''고대의 소리''(1925년)와 상통하는 미감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저자는 또 로코코 미술의 서막을 연 와토의 ''시테라 섬의 출범''과 혜원 신윤복의 ''연소답청(年少踏靑)''을 함께 보여준다.

''시테라 섬의 출범''이 프랑스 귀족사회의 사교계 표정을 통해 쾌락 뒤에 자리잡은 인생의 허무함을 그리고 있다면 ''연소답청''은 유교사회 양반 자제들의 인간적인 욕망을 해학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 루벤스의 아름다운 ''모피''와 조선시대의 ''미인도''를 비교한 뒤 그 이미지의 끝자락에서 가을 들판의 마타리 꽃을 떠올린다.

''황색 미타리 꽃이 애잔히 흔들리는 모습은 애수 그 자체이며,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볼 수 있다면 왜 ''미인''이란 꽃말이 붙었는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꽃도 미인도 때로는 적당한 거리에서 볼 때만이 온기를 느끼며 그 아름다움에 상처를 주지 않기 때문인가''

한폭의 그림을 놓고 이만한 사고의 폭과 이미지의 응축을 뽑아내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감칠맛 나는 글솜씨 또한 책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밖에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삼국시대 ''금동미륵반가사유상'',프란츠 클라인의 ''숫자 8''과 강세황의 ''영통동구'' 등 70여점이 저자의 사려깊은 눈에 의해 새롭게 비춰진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니콜라 푸생의 ''나 역시 아르카디아에 있었노라'',김홍도의 ''마상청앵도''와 칸딘스키의 ''즉흥''도 동서양의 아름다움을 씨·날줄로 보여주는 명화들이다.정씨는 "살아있는 예술은 부드러운 매력으로 마술을 걸듯 우리를 다른 세계로 훌쩍 데려간다"며 "그림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진가가 드러난다"고 말한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