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기자의 '책마을 편지'] 티베트, 그 '정신의 高峰'

지난해 용평 발왕산 꼭대기에서 발견한 초등학생의 메모가 생각납니다.

전망대 이층 식당 벽에 여기 누구 왔다 가노라 하고 빼곡이 걸린 이름들 중에서 통 잊을 수 없는 글귀가 하나 있습니다.맞춤법도 맞지 않고 글씨도 비뚤비뚤했지요.

''아빠,그동안 말 안드러서 좨송해요.

아프로는 잘 드러께요''하,녀석이 어떻게 눈치챘을까요.

높은 곳에 오르면 누구나 잘못을 빌고 싶어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겁니다.최근 서점가에 일고 있는 티베트 관련 서적 붐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은 ''시간마저 사라진 곳''이라는 표현을 쓰더군요.얼마전 ''히말라야 눈부신 자유가 있는 곳''(웅진닷컴)을 펴낸 작가 김미진씨는 ''세상에,하늘보다 높은 것이 있다니''라고 탄복했습니다.

시인 고은씨는 ''히말라야 시편''(민음사)을 통해 티베트 고도 라사에서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순간을 겪은 뒤 예술과 종교의 끝을 발견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엊그제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여동완씨가 ''티벳 속으로''(이레)를 내놨습니다.

티베트 여행 가이드북이자 티베트 역사와 문화의 보고서이지요.

그가 10년 동안 티베트 일원을 누비며 찍은 사진을 지난해 같은 제목의 사진집(도서출판 가각본)으로 엮었다가 여기에 티베트에 대한 해설과 여행정보를 덧붙인 것입니다.

오체투지로 신에게 경외감을 표시하는 순례자,야크를 타고 이동하는 유목민,포탈라 궁의 웅장한 모습,조장(鳥葬)을 마친 시신을 쪼아먹는 대머리 독수리,사원과 시장 풍경 등 2백50여장의 생생한 사진이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지난달 출간된 ''티베트의 신비와 명상''(도피안사)에는 김규현(한국티베트문화연구소장)씨의 10년 발품과 함께 이곳의 역사 미술 문화 종교가 담겨 있지요.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여기에서는 산을 정복함으로써 얻는 희열보다 산을 받아들여 자신을 완성시키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

김한규 서강대 교수의 ''티베트와 중국''(소나무)은 양국의 과거와 현재,망명정부의 비애,해외 역사학자들의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는 책이지요.

5개월 전에 다시 번역돼 나온 ''티벳 해탈(解脫)의 서(書)''(정신세계사)에서도 아름다운 ''정신의 고봉(高峰)''이 주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 책은 달라이 라마의 방한이 추진되는 것과 연관이 있어보입니다.

그러나 각박한 세상에 잠시 쉴 곳을 제공하는 숲속의 그루터기처럼 청량한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더욱 반갑습니다.

요즘처럼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는 삶의 높낮이를 가늠하기조차 힘들지요.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가장 높은 곳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마음의 봉우리들을 지니고 있습니까.

일상의 먼지를 털고 하얗게 빛나는 설원의 꼭대기까지 가 닿는 길은 사실 우리 마음 속에 있지요.

그 높은 곳에서 우리는 산소처럼 상큼한 성찰 하나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아,발왕산 꼭대기에만 올라도 잘못을 빌고 싶어지는 꼬마녀석이 있지 않던가요.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