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외규장각도서 반환

모리스 쿠랑은 ''조선서지''에다 프랑스군이 병인양요(1866)때 강화도에서 약탈해 간 도서를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기증했다고 기록해 놓았다.

그리고 1975년 그 도서관에 근무하고 있던 박병선씨는 파손도서 창고에서 1백91종 2백97권의 외규장각의궤도서를 발견했다.그가 우리 대사관에 알렸지만 외교관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프랑스정부에 도서반환을 요청한 것은 91년말이다.

93년 9월 한국방문을 앞둔 미테랑 대통령은 한국특파원 회견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반환된다면 좋겠다는 견해도 밝혔다.

하지만 문화계의 심한 반발로 정작 그가 한국에 가져온 것은 ''휘경원원소도감의궤'' 한 권뿐이었다.

그뒤부터 프랑스측이 협상에서 내세운 것이 영구임대도 아닌 등가등량교환이다.엊그제 한.불정상회담에서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보관중인 외규장각도서중 한국에 부본도 없는 어람용 유일본 63권을 필두로 내년까지 모두 가져오는 대신 국내에 있는 같은 종류와 수의 비어람용 의궤를 프랑스에 주는 원칙에 합의했다고 한다.

''대등한 문화재 교환 전시'' 형식이라지만 외교적 수사일뿐 비슷한 가치를 지닌 우리 문화재를 대신 내주는 등가등량교환이나 다름없다.

둔황에서 발견된 ''왕오천축국전''이나 한말에 프랑스공사 프랑시가 경매에서 수집해 간 ''직지심경''을 돌려달라는 것이 아니다.왕위계승을 비롯 왕실의 중요 의식에 관한 규칙과 격식을 기록한 국가기본서지류인 의궤도서를 돌려달라는 것이다.

약탈행위의 증거가 분명한 문화재를 또다른 문화재를 주고 찾아온다면 과연 국민들이 용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프랑스가 약탈문화재를 무조건 돌려주고 우리 문화재를 빌려가는 대신 비슷한 가치를 지닌 그들의 문화재를 우리에게 장기임대해 준다면 몰라도 말이다.

지난해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우리측 협상대표가 이끌어낸 결과가 고작 이런 것이라면 차라리 협상을 벌이지 않았던 것이 더 낫다는 생각도 든다.프랑스의 명분도 지켜 주고 실질적으로는 영구히 반환받는 묘수는 없는 것일까.

오는 11월의 실무협상에 거는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