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익숙해진 한국 .. 도널드 그로스 <국제변호사>

도널드 그로스


한국은 이상하고도 멋진 나라다. 매일 새벽 북한산이 밝아올 때 나는 허벅지를 꼬집어보고서야 지금 이곳이 어디인지를 의식하며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도로시처럼 "여기는 미국의 캔자스가 아니야"라고 뇐다.

내가 한국생활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을 첫 방문한 것은 19년전이다.한국인 아내와 나는 한복을 차려 입고 한국의 전통혼례식을 치렀다.

미국 국무부에서 일하던 당시에는 가끔씩 한국의 관리·학자들과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나는 한국에 ''산다''는 것과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똑같지 않다는 사실을 지난 여름에 깨달았다.맨 먼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 일은 내가 세들어 있는 아파트의 주인 때문이었다.

한번도 집주인을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임대계약을 하기 위해 간접 상대하면서 미국 국무부 시절 북한과의 경험이 떠올랐다.그 유명한''벼랑끝 외교''를 펼치는 북한은 참으로 까다로운 협상 상대였다.

그런데 지금의 집주인은 내가 아는 북한 관리들보다 더 어려운 상대다.

웬만해서는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다.

그때 나는 북한의 협상스타일이 한국 땅주인들의 협상술에서 나온 게 아닐까 생각했다.

''미국인의 눈''에 비쳐진 이상한 일은 또 있다.

승객들을 가능한 한 불편하게 느끼도록 설계된 시내버스,아름답게 차려입고 운전자들을 맞이하는 여성 주차보조원들,빨간불을 보고 파란불 신호를 받은 듯 행동하는 운전자 등등….

물론 한국에서의 좋은 기억도 많다.

한국인 친척들과의 모임은 가장 행복한 추억중 하나다.

19년 전 나의 결혼식장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꼬마 조카''들은 이제 비무장지대(DMZ)부근에서 통신대를 지휘하는 장교,서울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부산의 공장장,서울 태권도 도장 주인 등으로 장성했다.

나도 이제는 더 이상 한국노래를 더듬거리지 않으며 또 소주를 한잔 이상 마시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게 익숙해졌다.

행복한 기억은 또 있다.

뜻이 잘 맞는 한국 로펌의 동료들과 협력해 복잡한 국제 법률문제를 풀어가던 일,몇년전 알게 된 한국인 친구와 나누던 깊이있는 대화,북한관계 전문가들로부터 받은 환대,일과 관련해서 만났던 아름답고 지적이며 또한 열정적이고 예의바른 한국 여성들-.

지난 넉달동안 멋지고도 이상한 일들을 겪고 난 오늘 ''낯선 나라''였던 한국은 내 집처럼 편안해졌다.그리고 매일 새벽 창밖으로 동이 틀 때 새삼 알게 된다.

한국은 아주 특별한 곳이란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