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감시대] (206) 제2부 : IMF시대 <5> 증오심 (14)

글 : 홍상화

김경식이 문 쪽 나상훈을 향해 애원하듯 소리치기 시작했다."선배님,선배님은 지금 취했어요.정신 차리세요.사람이 다쳤어요"

"취했다고? 나는 예술에 취한 사람이야.예술만이 인류를 구할 수 있어.자,그럼 내가 시키는대로 연기를 계속해"

나상훈이 문 쪽에서 다시 소리쳤다."저자는 미친 자야? 나상훈이라는 자지?"

백인홍의 말에 김경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술에 취하면 완전히 미쳐버려요.지금 만취상태인 것 같아요"김경식의 말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퍽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동시에 김경식이 허벅지를 잡으며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경식아,네 왼쪽 허벅지가 방금 명중됐어.걸을 수조차 없을 거야.자,그럼 연기를 계속해.계속하지 않으면 백 사장의 눈알에 내 탄환이 꽂힐 거야"

김경식과 백인홍이 고통스러워하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김경식이 소리쳤다.

"두 사람이 서로의 머리를 치받아"

김경식이 옆에 있는 백인홍의 머리를 잡고 부딪치는 체했다.

"그런 연기론 걸작을 만들 수 없어.더 세게 부딪쳐야 해.속이 개판인 머리와 돈만 아는 텅 빈 머리가 서로 부딪치면 어떤 소리가 나는지 관객이 분명히 듣도록 해야 돼"

김경식의 머리가 다시 백인홍의 머리를 슬쩍 받았다.

퍽퍽 하는 소리와 함께 공기총에서 발사된 납덩어리로 그들 주위의 나무바닥이 깊게 패였다.

"다시 제대로 해봐"

문 쪽에서 다시 나상훈의 소리가 들려왔다.

백인홍이 김경식의 머리를 세게 박았다.

두 사람이 동시에 자신들의 머리를 손으로 감쌌다.

"잘했어.그럼 다이얼로그를 해야지….마르크스 똘마니가 먼저 이런 대사를 해.자본주의는 병들었어.그것도 중병이 들었어.치료할 수 있는 약은 마르크스주의밖에 없어.그런 다음…"

나상훈은 잠시 숨을 골랐다.

"자본주의 주구…당신은 이렇게 말하는 거야.''아니야 환자의 병보다 병을 고치는 약이 더 위험해.더 고통스럽고 더 빨리 환자를 죽이지…'' 대화가 멋있잖아.역시 나는 천재야.자…,그럼 대사를 시작해봐"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문 쪽에서 나상훈의 말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경식이 넌 나를 실망시켰어.그 따위 자본주의 주구 하나 처치 못하고 오히려 그자 말에 현혹되다니"

백인홍이 김경식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 순간 백인홍은 지금 공기총을 들고 있는 나상훈이 김경식을 뒤에서 조종하는 자임을 직감으로 알아챘다.

"저자와 당신 사이는 어떤 관계야?"

"존경하는 선배님이에요"

김경식의 말에 백인홍은 기가 찼다.

나상훈 같은 미치광이를 존경하고 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김경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당신 시키는대로 연기를 계속하겠소.공기총은 쏘지 마시오.당신도 폭력주의자는 아니잖소"

백인홍이 힘들게 일어나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