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호국인물"에 김용호 해병중위 선정
입력
수정
전쟁기념관(관장 홍은표)은 ''11월의 호국인물''로 한국전쟁 때 서울의 관문인 장단지구(사천강)에서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격퇴한 뒤 자결한 김용호(金龍鎬·1929∼1952) 해병중위를 선정했다.
1929년 함남 원산에서 출생한 그는 52년 3월 해병소위로 임관,서울에서 불과 40㎞ 거리의 전략적 요충지 장단지구를 방어하고 있던 해병 1연대 11중대 3소대장을 맡아 그 해 4월부터 중공군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김 소위는 같은 해 10월31일 야음을 틈타 대공세를 감행해 오는 중공군을 맞아 사천강 전초진지에서 1개 소대 75명의 병력을 이끌고 백병전을 벌이며 격렬한 사투 끝에 중공군 1백15명을 격퇴시키고 진지를 사수했다.
그러나 중공군을 물리친 뒤 소대원이 70명이나 전사한 것을 확인한 그는 "부하들이 많이 희생돼 중대장을 뵐 면목이 없어 대원들이 잠든 이 곳에서 죽음을 택한다"는 짤막한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23세.
정부는 그의 책임감과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 1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1929년 함남 원산에서 출생한 그는 52년 3월 해병소위로 임관,서울에서 불과 40㎞ 거리의 전략적 요충지 장단지구를 방어하고 있던 해병 1연대 11중대 3소대장을 맡아 그 해 4월부터 중공군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김 소위는 같은 해 10월31일 야음을 틈타 대공세를 감행해 오는 중공군을 맞아 사천강 전초진지에서 1개 소대 75명의 병력을 이끌고 백병전을 벌이며 격렬한 사투 끝에 중공군 1백15명을 격퇴시키고 진지를 사수했다.
그러나 중공군을 물리친 뒤 소대원이 70명이나 전사한 것을 확인한 그는 "부하들이 많이 희생돼 중대장을 뵐 면목이 없어 대원들이 잠든 이 곳에서 죽음을 택한다"는 짤막한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23세.
정부는 그의 책임감과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 1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