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퇴출'] "가장 추운 겨울되나" .. '퇴출기업 임직원표정'

"이제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는데 올 겨울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채권은행단의 ''살생부(殺生簿)''가 발표된 3일,퇴출기업 명단에서 자기 회사이름을 확인한 해당회사 직원들은 일손을 놓고 걱정에 휩싸였다.짧게는 1∼2년에서 길게는 수십년씩 몸담았던 직장이 청산대상으로 확정됐다는 발표를 들은 직원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TV에서 자기 회사의 이름이 나오자 일제히 일손을 놓고 복도나 사무실 곳곳에 모여 걱정어린 대화를 나눴다.

창가에서 담배 연기를 길게 뿜으며 먼 하늘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고 전화기를 잡고 가족들에게 우울한 소식을 전하는 모습도 보였다.우성건설 이원규 과장은 "지난 95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3백60여명의 직원들이 5년동안 온갖 고생을 견뎌내면서 회생을 위해 노력해왔는데 수포로 돌아가버렸다"며 "할 줄 아는 일이라곤 건설 뿐인데 건설경기조차 최악이어서 살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의 고통도 애타지만 우성건설과 함께 해 온 1백80여개 하청업체들도 줄도산을 피할 수 없어 엄청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미주실업의 이정훈(43)부장은 "회사청산 작업을 마무리한 뒤 새 직장을 찾을 계획"이라며 "이미 1백여명의 동료가 소리없이 떠났고 뚜렷한 대책도 없다"고 막막한 심경을 털어놨다.신화건설의 조휘재 이사는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랐다.산업경기 침체로 시장상황이 나빠지긴 했지만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플랜트 설비 기업이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되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회사내부에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분위기가 충만하고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져도 남아서 일하자고 결의했는데 채권자들이 야속한 결정을 내렸다"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대한중석의 한모(48)씨는 "내년에 큰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는 데 교육비를 어떻게 댈 지가 가장 큰 걱정"이라며 "과거엔 상당히 좋은 직장이었는데 어쩌다 이 모양이 돼 아버지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됐다"고 한숨 지었다.물론 퇴출을 미리 기정사실로 알고 의연하게 결과를 받아들이는 직원들도 있었다.

제2차 기업구조조정 얘기가 나돌 때부터 친구와 친지들에게 연락,새로운 일자리를 알아 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적금을 해약해 놓는 등 차분하게 ''고난의 날''을 준비했다는 직원도 있었다.준비가 있었건 없었건,퇴출기업 직원들에게 올 겨울은 생애에서 ''가장 추운'' 겨울이 될 것이다.

장유택 기자 chang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