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 이제부터...] (7) 재계가 원하는 원칙

한국의 채권단이 대우자동차를 최종 부도처리한 지난 9일,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한국이 기업 및 금융개혁의 필요성에 정면 대응하기 시작했다는 환영할 만한 신호탄"이라며 반겼다.

외신의 이런 지적이 아니더라도 한국 정부와 은행들이 기업 부실의 옥석을 가려 환부를 도려내는 작업에 본격 나선 것은 오히려 만시지탄이 있다고 할 일이다.다소의 아픔과 후유증을 우려해 부실 기업 퇴출조치라는 "수술"을 미루기에는 한국 경제가 처한 여건이 너무나 절박해졌다.

재계 관계자들 자신이 누구보다도 이런 현실을 절실하게 새기고 있다.

그렇기에 수십년간 ''수출입국''의 기치 아래 공든 탑을 함께 쌓아올려 온 동료 기업들의 잇단 퇴출을 현실로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S사 H사장)그렇다고 재계쪽이 오늘의 현실을 ''피할 수 없었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가정(假定)이긴 하지만 ''정책의 칼자루를 쥔 정부와 돈줄을 거머쥔 금융계가 좀더 눈을 부릅뜨고 일부 기업들의 일탈행위를 감시했다면''하는 아쉬움을 감추지 않는다.그랬더라면 무모한 팽창 경영 등 ''자충수''로 스스로의 명을 재촉한 몇몇 거대기업들의 비극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푸념이다.

예컨대 지난 96년 기아자동차와 한보그룹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가 대형 부실을 낳고,그로 인해 부도라는 덫에 걸려 좌초했을 때 기왕의 기업 감시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L사의 C상무는 "그런 위기를 맞고도 정부는 기업 감시시스템의 재점검이라는 본질을 소홀히 했다"고 비판했다.정부는 기아ㆍ한보사태가 야기했던 미증유의 외환위기 초기에 대기업그룹을 상대로 ''빅딜'' 등 다분히 전시효과를 노린 인위적인 산업개편을 무리하게 밀어붙였고,결국은 아까운 기회를 그냥 날렸다는 지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이 12일 ''일본경제의 구조조정 경험과 정책시사점''이라는 연구자료를 내놓고 정부에 ''원칙있는 구조조정''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한경연은 보고서에서 "정부는 그동안 상시 구조조정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는 대신 문제가 누적되면 획일적 지침을 통해 부실기업을 퇴출시켜왔다"며 "이런 전시적 충격 요법은 진행상황에 따라 투자자들의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재계는 이와 함께 구조조정의 대원칙으로 부실기업의 퇴출뿐 아니라 생존기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특히 구조조정시 ''태풍의 눈''으로 떠올라있는 대량 실업자 처리 문제에 대해 정부가 일정한 공적자금 투입 등 실효성 있는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좌승희 한경연 원장은 "공적 자금을 은행 등 금융기관을 회생시키는데만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일부는 실업수당과 재취업 훈련 등에 투입한다면 근로자들이 구조조정을 위한 감원에 무작정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기업 구조조정을 근원적으로 가로막는 노사갈등을 원인 치료하는데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일이 터지고 난 후 기업의 생사(生死)나 판별하는 뒷북치기식 행정이 아니라 시스템적 접근을 통한 선(善)순환 구조조정의 제도적 틀을 다지는 작업을 더이상 미뤄서는 안된다는 게 정책 당국을 향한 ''시장''의 절규다.

이학영 기자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