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금융읽기] 경제력 漏水현상과 한국경제

98년 9월말,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세차례 금리인하 이후 회복세를 탔던 세계경기가 최근 정점을 지나 하강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한때 4.5%에 달했던 세계경제 성장세가 4.0%내외로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추정하고 있다.최근처럼 세계경기가 정점을 지날 때는 각종 가격변수를 비롯한 경제통계가 더 이상 경제실상을 반영하는 얼굴이 못된다.

그 결과 경제통계와 경제실상이 따로 노는,이른바 지표경기와 체감경기간의 괴리가 세계경제의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세계 각국간·산업간·계층간 양극화 현상이 폭넓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이번 세계경기처럼 부의 효과(wealth effect:주가상승→자산소득 증대→민간소비 증가→경제성장)와 정보기술(IT)산업이 주도될 때에는 양극화 현상이 과거 경기하강기에 비해 심하게 나타난다.

문제는 경제통계가 경제실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은 곧바로 경제력 누수현상(lame duck)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최근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의 리더십 약화현상이 눈에 띄고 있다.특히 미국 대선결과가 확정되지 못함에 따라 이런 약화현상은 리더십 부재 국면으로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동시에 세계 각국의 정책당국과 정책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진다.

대다수 국민들의 경제실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경제통계를 근거로 한 정책추진의 영향으로 정책과 정책수용층인 기업과 국민들이 겉도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일본처럼 집권당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이 자주 나타나고 있는 것도 이런 각도에서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럴 때 국제금융시장은 어떤가.

한마디로 국제금융시장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다시 말해 위험선호자(risk taker)들은 세계경기 둔화와 함께 떨어지고 있는 수익률을 보전하기 위해 ''고위험-고수익'' 자산을 선호한다.

최근들어 헤지펀드들의 활동이 재개되고 있고,벌처펀드·정크본드·밸류펀드와 같은 금융자산과 러시아·중남미 국채가 다시 매력적인 투자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다.

반면 위험기피자(risk avertor)들은 종전보다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진다.

단적인 예로 최근 전세계 투자자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국채시장으로 몰리면서 회사채와 국채 수익률간의 괴리가 심해지고 있는 현상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과도기적 단계에서 세계경기 둔화에 따른 요인까지 겹침에 따라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경제력 누수현상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경제주체들의 이기주의 행동 정도로 봐서 우리나라가 세계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이럴 때 세계 각국의 명암은 위기대처 능력에 따라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개도국들의 운명은 대외환경변화에 대한 완충능력 확보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

만약에 이러한 완충능력이 확보되지 않았을 경우 최근처럼 세계경기가 둔화될 무렵에 경제주권과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과제는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급변하는 대외환경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경제주체들이 운신할 수 있는 폭(room)이 넓어야 한다.

불행히도 우리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따라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고 정책당국은 도덕적 해이로,기업과 금융기관은 구조조정의 무거운 짐으로,국민들은 높은 실업률과 물가부담으로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바로 이런 점 때문에 정책당국자의 말처럼 우리 경제의 앞날을 마냥 밝게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