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속의 첨단과학] (8) '청동거울'..뒷면에 1만3300개線 새겨

지금으로부터 2천4백년전 우리 선조는 정교한 청동거울을 만들어 사용했다.

현재 숭실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국보 제141호 잔줄무늬 청동거울(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이 바로 그것이다.지름 21.2㎝의 청동거울 뒷면에는 높이 0.7㎜,폭 0.22㎜로 1만3천3백개의 세밀한 직선과 동심원이 그려져 있다.

이 무늬들은 1백개가 넘는 크고 작은 동심원과 그 원들을 등분하여 만든 직사각형 정사각형,그리고 삼각형들로 이뤄져 있다.

잔줄무늬 청동거울은 머리카락 두께의 정교한 선이 새겨진 청동기 유물로 다른 나라에서는 발굴된 적이 없는 유물이다.2천4백년전 청동기인들은 어떻게 21㎝에 불과한 동판에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가는 선들을 촘촘히 그려 내는 ''신의 솜씨''를 발휘했을까.

현대 컴퓨터기술로도 이렇게 정밀한 제도는 재현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하니 제도기술의 우수함에 놀랄 따름이다.

현재까지 청동거울을 주조해 낸 완형(完型)거푸집이 출토된 바 없어 어떻게 정련,주조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거푸집이 출토된다 해도 종이도 없던 시절에 설계도면을 어떻게 만들었으며 거푸집에 무슨 도구로 어떻게 새겼을까라는 의문은 풀리지 않을 것이다.

거푸집의 재질은 현재 추정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돌 진흙 밀랍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어느 하나도 1만여개가 넘는 선각(線刻)을 명쾌하게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다.거울을 만드는데 쓰인 아연-청동 합금 기술도 신비스러운 부분 중 하나다.

우리 선조는 청동기시대 초기부터 황금빛을 내기 위해 구리 주석 납에 아연을 섞은 아연-청동 합금을 많이 사용했다.

이러한 성분의 청동은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에 이르기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아연은 섭씨 9백도 정도에서 끓고 그대로 증기로 달아나 버리는 반면 청동은 섭씨 1천도까지 가열해야 주물을 부어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성질이 확연히 다른 금속으로 합금을 만들 수 있었는지는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오늘날 우리 나라 제철산업이 세계 일류를 달리고 있는 것도 어쩌면 우리 피 속에 흐르는 선조의 지혜 덕분이 아닐까.

손욱 삼성종합기술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