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중심 못잡는 집권여당

최근 국정 현안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 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농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다음날인 22일 민주당 박병석 대변인은 "농민 시위에 한나라당 핵심 당직자가 관여했다"고 ''폭로''했다.그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한나라당이 ''막가파''식 폭로를 한다고 비난했던 민주당이 이번에는 농민들의 집단행동에 ''정치적 음모''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농민단체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비난했다.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도 "당원이 3백만∼4백만명인데 이런 식이라면 대한민국의 모든 행사는 한나라당이 배후가 된다.여당이 이런 식으로 대처하니 문제가 악화된다"고 말했다.

여당 내에서조차 문제의 본질을 비켜가면서 이같이''꼼수''를 쓴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민주당은 또 농민시위와 관련,이날 긴급 당정회의를 통해 정책자금의 장기 분할상환 등 화려한 정책을 발표했다.그러나 발표 내용의 대부분은 지난 20일 농림부가 청와대에 보고한 것의 ''복사판''이었다.

그나마 새로운 내용은 ''농어가 부채경감 특별법'' 제정뿐이었지만 이마저도 23일 열린 당정회의에서 "법 제정 원칙에는 변함없지만 정부가 반발해 신중히 추진하겠다"며 슬쩍 발을 뺐다.

공적자금 동의안 처리와 관련한 민주당의 태도도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지난 19일 한나라당은 내년까지 필요한 공적자금이 7조∼10조원이고 이중 4조원은 예보의 자체 조달이 가능하다며 공적자금 조기투입론에 제동을 걸었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론만 되뇌다 뒤늦게 재경부로부터 자료를 받아 처리가 시급한 구체적 이유를 제시했다.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정책 정당이 무색할 지경이다.

당내에서 이같은 행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나 민주당 지도부는 요지부동이다.

개혁 성향의 의원들이 당 쇄신론을 주장하자 서영훈 대표는 "때가 아니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손톱 밑에 가시 드는 줄은 알아도 염통 밑에 쉬 스는 줄은 모른다고 했다.당장 겉으로 보이는 문제만 대증요법으로 해결하려는 집권당의 태도에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김남국 정치부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