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빗물의 '生' .. 박라연 <시인>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의 생을 물끄러미 본다.

본받고 싶었던 인물들에 대한 기억의 회로속에 잠겨보고 싶어서 물방울들의 길만으로 내 마음의 세계지도를 만들기로 한다. 저 길을 밟고 왔다가 연소되어 우주의 한켠으로 사라졌을 페스탈로치,슈바이처,톨스토이,퀴리부인 등의 위대한 생(生)이 내 지도에 맨 먼저 나타난다.

그들의 삶도 처처(處處)에서 흔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정진하여 제 삶의 용량에 맞는 이름을 얻었을 것이며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인물''의 이야기로 회자되고 있는 것이리라.어린 나이때 위인전을 읽으면서 ''나는 이미 틀렸구나''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너무나 특별했다는 이야기로 서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유년시절부터 ''신의 자식''처럼 특별했다는 정보는 그 글을 읽는 이에게 귀감이 되거나 꿈을 안겨주기보다 오히려 일찌감치 주저앉게 만들지나 않을지,꾸준히 노력하여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독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전기가 되게 쓰면 어떨는지….쉴새없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빗방울들이 마치 별들의 운행이나 또는 막 산란을 시작한 물고기떼들의 끝없는 이동같다.

그 귀퉁이마다에 둥그렇게 내 마음을 문신해 본다.

''과연 어떤 모양의 별들이 생겨날까.또 얼마나 많은 물고기들을 산란시킬 수 있을까''라는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변화에 대한 욕구일 수도 있으리라.

창밖의 풍경을 창안에서 바라볼 때와는 달리,창밖 빗방울들의 생이 바람과 차의 속도,도로사정에 의해 위태로운 때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창안에서 바라볼 때는,위태로움은 잘 안보이고 신비와 전율을 느끼게 하듯 사람의 생의 내용 또한 유사할 것이다.그래서 생에 대한 감동을 너무 쉽게 사고 파는 것도 죄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경솔함에 대한 대가를 묻는 우주의 기(氣)가 존재한다는 것도…. 그러나 깊고 깊은 곳에 제 향기를 숨기는 일,깊고 깊은 곳에 숨어 사는 침향(沈香)을 발견하는 일을 누군들 쉽게 터득할 수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