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누더기 예산안' 늦지나 말지

''크리스마스 예산심사''를 거치는 등 우여곡절 끝에 27일 새벽에야 새해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정 처리시한을 무려 25일이나 넘긴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예산안이 처리됐지만 여야가 합의한 안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총 1백40여건의 증액 항목 가운데 58건은 상임위나 예결위 회의에서 전혀 거론되지 않다가 갑자기 계수조정 과정에서 끼여든 민원성 사업이다.

"한 푼도 헛되이 쓰지 않겠다"는 여야 총무의 합의정신은 휴지조각이 됐고 일부 의원들조차 ''야합''이라고 비난했다.총 8천억원 순삭감이란 헌정사의 ''기록''을 남겼지만 재해대책 예비비 등을 대폭 줄인 ''눈가림 삭감''이어서 추가경정 예산안 편성은 불가피하다.

입만 열면 정부가 세계잉여금을 국가부채 상환에 쓰지 않았다고 질타하던 한나라당은 계수조정 과정에서 부채상환용으로 계상된 예산을 모두 삭감해버렸다.

이런 ''누더기'' 예산안을 통과시키려고 무려 25일을 허비했느냐는 비난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헌법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국회가 예산을 처리하도록 했다.

그러나 정작 헌법을 위반해 ''지각 심사''를 한 의원들의 태도는 태연하기 그지없다.

민주당 정세균 의원이 본회의에서 "대단히 송구스럽다"고 말한 것이 전부다.예산안 반대 토론에서도 새만금사업이 쟁점이 됐지 장전으로 받들어야할 헌법을 위반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가 없었다.

여야 지도부도 예산안 늑장처리에 대해서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전문가들은 예산안 처리가 늦어져 많은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입을 모은다.불과 닷새만에 작성될 재정운용 계획이 짜임새있을리 만무하다.또 눈에 보이진 않지만 적기에 예산이 투입되지 못해 발생하는 피해는 엄청나다.

의원들은 기회만 있으면 정부의 ''도덕적 해이''를 개탄해왔지만,이번 예산안 심의는 도덕적 해이의 전형으로 지탄받고 있다.통상 국회에 출석한 국무위원들은 "의원들의 지적사항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그러나 이런 국회라면 겸허해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김남국 정치부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