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주영의 '골프에세이'] '단1타'와 내 양심의 갈등

라운드에 들어가서 싱글을 쳤든 혹은 1백타 이상을 쳤든 자신이 날린 공 하나 하나에는 한결같이 버디,파,보기,더블보기와 같은 고유의 이름이 붙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것처럼 볼 한 개 한 개에는 모두 이름이 있고,그 이름들이 모두 한데 모여 골퍼의 핸디캡이 결정되는 것이다.나에게는 ''독립군''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샷을 날릴 때마다,채를 들고 숲속을 종횡무진으로 헤매면서 공을 찾아야 하는 신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날린 공이 숲속도 아닌,동행한 골퍼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경사지 아래이거나 이웃 코스의 페어웨이에 떨어졌을 때가 있다.특히 경사지 잔디에 박혀 있는 공을 발견했을 때는 당장 혼란이 온다.

그러나 뛰는 가슴을 가다듬고 가르쳐준 대로 자세를 취하고 샷을 날려도 십중팔구 뒤땅을 치거나,공 위쪽을 쳐서 굴러가다가 바로 앞에서 멈추거나,본래 놓여 있던 자리보다 더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낭패를 자주 경험한다.

그때 내 시선은 순간적으로 경사지 위쪽으로 가 있다.도우미 아가씨가 이 광경을 주시하고 있지나 않을까,혹은 동행한 골퍼가 바라보고 있지나 않을까 해서다.

왜냐하면,그 두 가지 시선이 모두 배제되었을 때,페어웨이로 올라가서 경사지 아래에서 실수한 샷을 속일 수 있다는 생각이 전광석화처럼 머리를 스쳐가기 때문이다.

1백타 내외를 가파르게 오가는 나의 경우 한 타의 위기를 감추는 것이 곧 골프운명을 좌우하는 것처럼 생각되는 까닭이다.그러나 공교롭게도,혹은 얄밉게도 도우미 아가씨가 언제부턴가 경사지 위쪽에 나타나서 내 일거수 일투족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삼엄한 시선은 비열한 내 속내까지 깡그리 꿰뚫어 보는 듯하다.

페어웨이로 올라가서 나는 그녀에게 귀엣말로 거래를 튼다.

경사지 아래에서 저지른 실타를 없었던 일로 해달라고.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내 인생이 언제부터 이토록 교활하고 비굴해진 것일까.

jykim@paradis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