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러 화학무기 제거비용 아껴서야

과거 반세기 동안 지속된 동서 진영간 긴장은 동서진영 모두에 많은 과제를 남겨줬다.

지상군의 감축,군사기지 폐쇄,방사선 폐기물 등으로 오염된 지역의 청소 등등.그리고 무엇보다 냉전으로 인해 오랫동안 단절돼온 미국과 러시아,그리고 다른 나라간 교류와 신뢰를 재구축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그러나 이 모든 냉전시대의 유물을 제거하는 것 중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매우 위험하고 높은 유지비용이 드는 핵무기 화학무기 그리고 생화학무기를 폐기하는 것이다.

불과 3년전 미국 상원과 러시아 두마는 국제 화학무기 협정에 서명했다.

오늘날 1백73개 국가가 이 역사적인 협정에 서명했다.

서명국은 화학무기에 대해 연구하거나 개발하는 것,그리고 화학무기의 생산및 비축이 금지된다.

이 협정은 세계최대 화학무기 보유국인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모든 서명국들로 하여금 향후 10년간 화학무기 창고를 모두 폐기토록 규정하고 있다.

화학무기는 제1차 세계대전때 마지막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됐으나 러시아와 미국은 아직도 엄청난 재고를 갖고 있다.

미국은 3만1천톤에 달하는 9개지역 화학무기 창고를 성공적으로 없애왔다.

미국과 러시아가 화학무기를 없애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화학무기 창고를 없애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이다.

미국의 경우 총 2백억달러가 소요되는데 이는 처음 화학무기 창고를 지을 때 들어간 비용보다 훨씬 많다.

러시아의 경우 약 1백억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러시아의 화학무기 창고는 미국보다 30%가량 크지만 그렇게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고 없애는 데 크게 위험하지도 않게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의 경제상황으로 그렇게 큰 돈을 지불하기 어렵다.

따라서 서방세계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8년전 시작된 미국의 화학무기 제거 프로그램이 지금까지 약 1억5천만달러를 모금,시베리아에 있는 5천4백?의 화학무기를 없애는 데 투입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난 2년간 미국 하원은 이 프로그램이 미국의 국익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의 폐지를 추진해 왔다.

러시아 두마 역시 화학무기 제거 계획에 충분한 재정지원을 하기를 꺼리고 있다.

나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포함,많은 세계각국 지도자들에게 화학무기 제거를 위한 재정지원을 해달라고 편지를 보냈고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를 비롯 많은 지도자들이 지원을 약속했다.

푸틴 대통령도 화학무기 제거에 배정하는 예산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러시아의 화학무기 제거에 드는 비용분담을 요구하는 미국 하원의 목소리에 어느 정도 동감은 하지만 러시아 화학무기 제거에 돈을 쓰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러시아가 보유중인 화학무기중에는 배낭에 넣을 정도의 소량만으로도 수천명을 죽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이들 화학무기는 도난당해 전세계적으로 퍼질 위험성을 언제나 안고 있다.

만약 미국이 러시아 화학무기 제거 프로그램에 지원을 끊는다면 러시아도 화학무기 제거에 소극적으로 나올지 모른다.

그것은 국제사회에 또 다른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 모두 냉전기간 동안 무기개발 등에 수조 달러를 써왔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우리의 생명과 환경을 위협했던 그 무기들을 없애는 데 돈을 써야할 때다.

정리=김선태 기자 orc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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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최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