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에게 듣는다] (7)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

"기업은 이익을 많이 내는 것이 주주를 위하는 길이고 경영권을 방어하는 가장 확실한 해법입니다"

현대그룹에서 완전 분리돼서 첫 새해를 맞은 정몽구(63)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의 경영관은 의외로 차분하면서도 명쾌하다. 그는 기업외에 다른 일에는 일체 신경을 쓰지않고 오로지 경영기반을 확고하게 다져놓는데 전념할 생각이라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정 회장은 "도요타와 같은 강력한 경쟁자들이 한국시장으로 몰려올수록 우리는 밖에서 더 팔면 된다"면서 올해 예상되는 내수불황을 수출로 만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98년말 현대.기아차 경영 사령탑을 맡은 정 회장은 그동안 기아차경영을 정상화시켰고 다임러크라이슬러와의 전략적 제휴를 성사시키는 한편 계열분리에 성공했다. 그는 지난 2년간 숱한 도전과 역경을 극복하고 전문경영인의 입지를 다졌다는 재계의 평을 받는다.

신문에 나는 것을 꺼리는 정회장을 지난 9일 오후 서울 양재동 신사옥 21층 회장실에서 만나 1시간여에 걸쳐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 대담 = 이동우 산업부장 ]-올해 나라 안팎의 경제상황이 심상치않습니다.

현대·기아자동차의 대응은 어떻습니까.

"올해 현지생산을 포함해 현대는 1백19만대,기아는 76만대를 해외시장에서 판매할 계획입니다.작년보다 53만대 정도 늘어난 것이죠.

주력시장인 미국 유럽에 대한 수출을 최대한 늘리고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새로운 시장을 적극 개척할 예정입니다.

물량도 물량이지만 수출액을 늘리려면 부가가치가 높은 차를 수출해야 합니다.

싼타페 그랜저XG EF쏘나타 카니발 트라제XG 등 고가차에 기대를 걸고 있죠"

-아무래도 미국시장이 관건일텐데요.

"올해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47만대 정도를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문제는 환율이에요.

일반적으로 대미달러 환율을 1천2백원 정도로 보지만 어느 정도를 잡느냐에 따라 수출여건이 달라져요.

이를테면 환율이 1천50원이 되면 적자가 나 수출을 못하게 돼요"

-미국 현지공장 설립문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당분간 좀 더 두고볼 생각입니다.

현재 미국 물류수송비는 차값의 5~6%나 됩니다.

완성차엔 3% 관세도 붙고요.

8%의 부담이 있는 셈이죠.

현지생산문제는 R&D(연구개발)가 얼마큼 뒷받침하느냐가 관건이에요.

차 한대 개발하는데 1억5천만달러나 들거든요.

한국이 아직은 임금이 싸고 시설도 잘 돼있지만 미국에서 차를 만들면 현지차가 되는 측면도 있어 시간을 두고 봐야겠어요.

장기적으로 결정해야죠"

-일본은 소비자들의 취향이 까다롭고 ''눈높이''가 높은데다 중소형 승용차에 관한 한 독일보다도 우수하다는 평을 듣는 나라인데 일본시장 진출이 빠른 감은 없을까요.

"여러가지를 생각한 끝에 일본에 지금 가야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초기 적자를 각오하고 있습니다.

내년까지 일본에서 1만대를 팔 계획이지만 그 정도로는 손익이 좋을리 없지요.

하지만 다른 시너지효과를 노리고 있습니다.

우선 일본에서 차를 제대로 팔려면 품질과 서비스수준을 높이기 위해 우리 스스로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일본 진출은 품질혁신의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일본외 세계 1백60개국에 퍼져있는 ''딜러''들을 격려하고 힘을 북돋워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일본시장에서도 팔린다''는 사실이 해외딜러들을 통해 널리 퍼지면 현대차의 이미지가 올라갈 겁니다.

언론매체를 통한 홍보효과도 기대합니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현대를 처음 기대했던 것 이상의 좋은 파트너라고 여기고 있다는 외신보도가 있더군요.

양사가 합작범위를 넓힐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만요.

"맞는 얘깁니다.

국내 상용차 수출은 세계시장에서 1%밖에 안됩니다.

국내시장은 생산과잉이고요.

그래서 상용차분야에서 세계 1위인 다임러와 지분을 50대 50으로 하는 합작회사를 만들고 기아 광주공장에서 소형상용차 등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협의중입니다.

현대로선 합작공장을 통해 생산과 고용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기술개발 면에서도 상당한 보완효과를 거둘 것으로 확신합니다.

다임러측도 한국 현대에서 조립생산해 중국과 동남아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중국등의 현지생산보다) 품질관리등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보고 있어요.

서로에 윈-윈인 거죠"

-다임러의 슈렘프 회장과는 사업적으로 잘 통하시는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기업이익을 최고로 안다는 측면에서 보면 피차 단순하면서도 분명한게 좋기도 하고….

사실 자존심이 돈버는 것과는 관계가 없잖아요.

그런 점에선 서로 통하는 것같아요(웃음)"

-대우차쪽에선 해외매각이 안되면 현대와의 협상 가능성에 아직도 기대를 거는 눈치입니다만요.

"현대가 기아를 인수한지 2년여밖에 안됐어요.

부품과 협력업체 플랫폼 공유 등 통합에 따른 상당한 시너지효과를 거두고 있지만 엔진과 미션 개발 등 아직 할 일이 많아요.

지금 대우차문제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판매는 제조업체들에 고민이지만 시대적인 대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기존 영업점과의 충돌은 없나요.

"인터넷 차판매가 이뤄지면 기존 영업망이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대 자체적으로)인터넷 차판매를 하지 않을테니 현재 방식으로 판매를 늘려달라''고 당부합니다.

동시에 ''딜러들이 시대흐름에 부응해 인터넷 영업을 적극적으로 잘하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식으로 간접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인터넷 차판매는 해야겠지만 당장 도입하면 시장을 다른 곳에 뺏깁니다.

연구는 하지만 서둘지는 않을 겁니다"

-세계적인 추세로 봐서 현대·기아차도 할부등 소비자금융을 강화할 것으로 압니다.

카드회사를 인수한다는 소문도 있던데요.

"카드회사 인수는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현대캐피탈에 대해서는 더 강화할 생각입니다.

다임러측과도 이미 얘기했고요.

장차 해외딜러들에게 자금을 지원해주는 방안을 고려중입니다.

그러려면 증자도 해야겠죠.

그러나 우선은 현대·기아차가 흑자를 많이 내서 부채비율을 줄이고 사내유보자금을 많이 갖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래야 해외에서 싼 자금을 조달해 딜러등에게 싸게 자금을 지원할 수 있게 될테니까요"

-그룹 출범을 계기로 기업이미지를 새롭게 하기위한 작업(CI)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필요성은 있지만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일이어서 충분히 검토한후 결정할 것입니다"

-시장에서는 아직도 자동차그룹과 현대건설을 비롯한 현대그룹과의 관계에 대해 주목하는 분위기입니다.

"지난번에도 현대건설을 일방적으로 지원하게 아니라 이사회 의결등 소정의 절차를 거쳐 거래를 한 것입니다.

계열분리가 된 만큼 앞으로는 설사 하고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

-정주영 전 명예회장님의 건강은 어떠신지요.

"지난 1일 찾아뵈었습니다.

일부에서 염려하는 것보다 건강이 좋으십니다"

-전경련 차기회장 후보로 자주 거명되고 있는데요.

"할 생각이 없어요.

지금은 자동차에 전념할 때예요.

그런 일을 맡을 상황이 못됩니다.전혀 관심없어 하더라고 크게 실어줬으면 합니다"

정리=문희수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