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시나리오로 눈길끄는 신인작가 '고은님'

"번지점프를 하다"의 미덕가운데 하나는 신선함이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이 없는 세상에서 "독특하다"라는 일치된 평가를 끌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감독도,출연배우들도 하나같이 "시나리오에 매료됐다"고 말하는 "번지..."는 사실 영화로 제작되기 훨씬 전부터 충무로에서 입소문을 탔다. 그 힘은 "번지..."가 흥행 기대작으로 점쳐지면서 더욱 돋보인다.

"번지..."는 신인작가 고은님(30)의 데뷔작.대학(독문학 전공)졸업후 MBC와 케이블TV등에서 5년동안 방송작가로 일했던,새롭다는 말에 숨넘어가게 좋아하는 소녀같은 여자다.

영화의 아이디어는 "닭살돋는 연애담"에서 출발했다. "남자친구가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저랑 사귀고 싶다고 말하곤 했었어요. 제가 그랬죠.내가 남자로 태어나면 어쩔거냐구요. 그러다가 그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극작가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99년봄 한 영화사 시나리오 작가로 응모해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두장짜리 시놉시스로 축약된 아이디어는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동성애 코드때문에 수차례 보류됐다. 당시 그 영화사에 소속됐던 눈엔터테인먼트의 최낙권 대표가 2000년 독립 제작사를 차리면서 그를 스카우트했고 창립작품으로 "번지..."를 하기로 했다.

아이디어에 살을 붙이기 시작해 3개월간의 작업이 이어졌다.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제목은 영화속 사랑의 끝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라는 역동적이고 생명감있는 이미지를 위해 붙여졌다. "주변에서 동성애 영화로 오인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많이 했어요.
주인공을 여자들로 바꾸자는 의견들도 나왔구요. 동성애 코드가 영화의 주조가 아니라는 점을 설득하는데 신경을 많이 썼지요"

"초등학교시절 첫사랑이건 학창시절 선생님에 대한 짝사랑이건 자신들의 이야기를 대입시킬수 있기를 바랐다"는 그의 말대로 "번지..."는 평범한 사랑의 감정을 세밀하고 꼼꼼한 터치로 아름답게 되살려낸다.

"숟가락과 숟갈"처럼 재치있고 감각적인 대사나 애드립으로 오인받을만큼 자연스런 대사들은 극의 재미를 돋운다.

"지하철이나 버스 카페에 앉아서도 옆사람들을 관찰하는게 재미있어요. 저마다 이야기거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장르에 상관없이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그런데 죽음도 가를 수 없었던 간절한 로맨스를 잉태시킨 사랑의 현재는? "어머,헤어졌어요" 까르르 웃어버린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니까.

글=김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