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에서] 거장은 고난속에서 탄생한다

''고난을 이겨내야 대작이 나온다''

예술사에서 불문율로 통하는 말이다.불꽃같은 예술혼으로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감내해낸 이들만이 명작을 남겼다는 얘기다.

거장의 지위에 오른 음악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쇼팽은 27세이던 1837년 심한 폐결핵을 앓기 시작했다.다행히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가 9년여 동안 헌신적으로 쇼팽을 간호했다.

쇼팽은 그 덕에 정신적 안정을 찾았고 작곡에 전념할 수 있었다.

''24개의 전주곡집''과 마지막 두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비롯한 대표적 걸작들이 이 무렵에 작곡됐다.''체코음악의 아버지'' 스메타나가 베토벤처럼 청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스메타나 하면 떠오르는 ''나의 조국''은 50세 때 귀가 먹은 뒤에 작곡한 곡이다.

차이코프스키의 아내는 그의 음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데다 편집증적인 증세도 보였다.차이코프스키는 이 때문에 심각한 신경병에 시달렸고 자살소동까지 벌였다.

그러나 그는 위기를 잘 넘겼고 ''교향곡 4번''과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을 남길 수 있었다.

지휘계의 거장 오토 클렘페러(1973년 별세)는 54세였던 1939년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가 재기에 성공했다.

51년에는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다 떨어져 허리를 크게 다쳤다.

하지만 그는 앉아서 지휘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이런 불굴의 정신에 대한 보답인지 그는 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지휘하던 중 벌떡 일어서게 된다.

우리나라 지휘계를 이끌고 있는 임헌정(부천필하모닉 음악감독)씨가 지난해말부터 극도로 건강이 악화됐다.

1999년 시작한 말러 교향곡 전곡연주 시리즈를 비롯해 올해 예정된 부천필 연주회에서 그의 모습을 자칫 못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임씨는 항상 진지한 기획연주로 일관해 많은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음악인.

말러는 물론 바르톡 브람스 등 주요 작곡가들의 곡을 깊이 천착하는 열정을 선보여왔다.

그래서 음악애호가들의 안타까움은 더하다.이번 병고를 이겨낸 후 그의 지휘봉이 더욱 기운차고 예리하게 허공을 가를 것으로 기대해본다.

장규호 기자 sein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