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공급과잉 공멸우려 급처방...반도체 투자축소 배경.전망

세계 반도체 업계가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은 제품 가격이 추가로 떨어질 경우 자칫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작년 7월 이후 제품가격이 계속 떨어져 경영에 적지 않은 차질을 빚고 있는 D램 업체들은 한번에 수조원씩 들어가는 라인 건설에 신중할 수 밖에 없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 시황이 계속 악화될 경우 반도체 투자 규모를 당초 예정보다 1조2천억원 가량 줄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일본 NEC와 히타치가 D램 사업을 벌이기 위해 작년말 설립한 엘피다도 본격적인 공장 건설 시점을 올초에서 하반기로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모토로라도 비용 절감을 위해 반도체사업 부문의 인력을 12% 가량 줄이기로 하는 한편 투자 축소와 영업비용 절약도 병행 추진키로 했다.메리츠증권 최석포 연구위원은 "올들어 세계 D램업계에 공급량 조절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중·장기적인 투자계획을 재조정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 축소 배경=D램 등 주요 반도체 제품의 가격 하락이 투자 축소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북미 시장에서 거래되는 D램 현물가격은 삼성전자 등 일부 경쟁력 있는 기업을 제외하면 총 원가를 위협하는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D램 가격이 추가로 떨어질 경우 물건을 팔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마이크론과 우리나라의 현대전자 등 D램 사업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갈수록 수익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올들어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PC 판매의 위축으로 당초 예상보다 반도체 시황이 악화될 것이란 인식이 급속히 퍼지면서 투자 조절에 나서는 것으로 해석했다.이에 따라 세계 주요 D램업체들은 생산량 위주의 경쟁을 가급적 자제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비메모리 사업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전자가 비메모리 매출 비중을 작년 10%에서 올해 17%로 끌어올리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반도체 가격 전망=주요 업체들이 투자 규모를 축소하면 공급량이 줄어 D램 등 반도체 가격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가격이 충분히 떨어진 만큼 투자 축소가 심리적인 안정을 가져오는 데 기여할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D램 수요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PC 메이커들이 반도체 재고를 충분히 줄인 만큼 반도체 메이커들의 투자 축소는 예상보다 강한 상승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에 반해 D램 가격이 가까운 시일내 회복세로 돌아서긴 어려울 가능성도 없지 않다.세계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반도체 수요 증가율이 위축돼 업체들의 투자축소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가격 회복을 속단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익원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