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춘곤증 걸린 보안의식

"같은 공무원끼리 업무협의에서조차 기본적인 보안이 전혀 안되니…"

공공부문 개혁의 키를 쥐고 있는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27일에도 공무원 조직의 ''보안의식''을 거론하며 거듭 혀를 찼다.문제의 발단은 전날 갑자기 불거져 나온 금융감독의 조직과 체제 개편방안에 관한 내부문건 때문이었다.

정부는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조직을 개편키로 하고 정부내에서 차관급 인사 5명과 같은 수의 민간전문가들로 짜여진 ''위원회''를 구성, 몇달째 개선안을 모색해 오던 터였다.

문건에는 이 위원회가 28일 모임을 갖고 최종적으로 결정내릴 시행방안이 들어 있었다.그런데 이 사실상의 최종시안이 위원회가 열리기도 전에 금융감독원 노조를 통해 언론에 일괄 공개된 것이다.

조직개편안에 대한 결정주체인 민간위원들은 아직 들여다 보지도 못한 문건이었다.

기획예산처의 한 실무담당자는 "(28일의) 최종 회의에 앞서 정부부처끼리 정책협의 차원에서 금감위로 건네진 자료"라며 "어떻게 노조측으로 바로 건네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개탄했다.그는 "장관들끼리 먼저 보기로 하고 금감위측 관계자에게 팩스 앞에서 직접 기다리게 해 이근영 금감위원장에게 직보토록 요청했다"고 했다.

당초엔 e메일로 이 문건을 보내려고 했으나 "요즘 웬만한 곳에서는 e메일이 해킹당한다"는 우려 때문에 팩스 앞에서 기다리면서 주고 받을 정도로 보안을 의식했다는 것이다.

보안의 구멍은 지난달에도 발생했다.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 금감위의 과장(급) 3명이 조직개편 방안을 협의한 내용이 바로 금감원 노조에 전해졌다는 것이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사전 협의내용까지 ''개편 당사자''에게 전해진 것은 심각한 사안"이라며 "관련기관에 보안감사라도 요청해야할 사안"이라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위원회의 민간 위원들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버리면서 한바탕 소란이 끝난 상황이었다.확정되지 않은 주요 자료가 빠져 나가 문제가 된 곳이 금융과 관련된 온갖 자료와 정보를 취급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

허원순 경제부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