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박은주 <김영사 사장> .. 해마다 대박 행진

새벽 3시 45분 경기도 용인의 작은 농가.

그는 간단한 준비를 마치고 참선에 든다.4시부터 1백분 동안의 명상.

서서히 몸을 풀고 집을 나서면 6시.

여명이 들판을 막 깨우는 시간이다.서울 종로 가회동에 있는 회사로 출근한 시각은 7시.

이 때부터 1시간동안 그는 "세상을 이롭게 할 책"과의 대화를 시작한다.

박은주(44) 김영사 사장.출판기획의 귀재로 불리는 "작은 거인"이다.

아무리 딱딱한 것도 그의 손을 거치면 말랑말랑하게 변한다.

거기에 재미와 감동까지 버무려 수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든다.이른바 베스트셀러를 빚어내는 황금의 손이다.

김영사가 지난 10년간(1990년대) 히트시킨 베스트셀러는 1백36종.

해마다 열서너종씩 "대박"을 터뜨렸다.

2위인 창작과비평사가 83종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거의 "독주"다.

에릭 시걸의 소설 "닥터스"(전2권)는 1백56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2백만부 가까이 팔렸다.

지난해 매출액은 1백2억원.

내년 2월 코스닥 시장 등록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주당 1백40배 펀딩(자금조달)에 성공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액면가 1천원짜리 주식을 14만원씩에, 총 15억원이나 조달한 것이다.

박 사장은 출판계에서 "눈이 밝고 촉수가 예민한 경영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

지난 79년 평화출판사에 입사한 뒤 82년 편집부장으로 김영사에 들어와 89년 사장이 됐다.

서른 두살에 창립자인 김정섭 전 사장으로부터 회사를 통째로 물려받은 것이다.

바로 그해 그는 대우그룹 회장이던 김우중씨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로 1백40만부 판매실적을 올렸다.

이 책은 6개월만에 1백만부를 넘어 최단기간 최다판매라는 기록을 남겼다.

15개국에 수출되기도 했다.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빵장수 야곱"도 명상 에세이붐을 일으키며 연속 히트했다.

93년에는 대선 패배로 영국에 가있던 김대중씨를 몇번이나 찾아가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의 원고를 받아냈다.

당시의 "삼고초려" 일화는 두고두고 출판계의 화제가 됐다.

이 책도 30만부 이상 팔렸다.

94년 미학사를 인수한 뒤 그는 또다른 밀리언셀러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스티븐 코비 지음)을 선보였다.

이를 계기로 한국리더십센터를 공동설립해 교육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했다.

국내에 코비 신드롬과 리더십 열풍을 몰고 온 것도 그였다.

그리고는 미국으로 훌쩍 날아갔다.

뉴욕대학원에서 그래픽 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과정을 마치고 와서 그는 99년부터 "디지털 경영"을 선언했다.

이후 "전자책 전도사"라는 별명을 하나 더 얻었다.

그는 출판의 영역을 넓히는 동시에 종이책과 전자책의 경계를 없앴다.

21세기형 첨단기업을 표방하며 "디지털 김영사"를 설립했다.

화면용 서체를 개발하는 "2bytefont연구소"도 세웠다.

현재 1만1천1백70자를 개발, 한글과 영어 한자까지 호환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장점을 접목시킨 도서포털사이트 "북새통"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이같은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김영사의 설립이념이 "책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자"는 겁니다. 창립자에게 처음 배운 덕목이 "세상과 사람에 대한 공경"이었는데 저는 회사와 함께 그 정신까지 물려받았죠"

출판사에서 "공경"이라면 독자를 먼저 위하는 일.

거기에는 회사 식구들끼리의 공경도 포함된다.

그래서 "김영사는 행복의 실험장"이라는 표현을 곧잘 쓴다.

박 사장은 함께 일하는 내부고객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을 키우는 시스템을 일찍 도입했다.

개개인이 창의성을 발휘하고 장래 희망을 단계적으로 일궈갈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누구에겐 어떤 업무를 더 시키고 해외연수를 보낸 다음에는 어떤 팀을 맡긴다는 식이다.

이럴 때 개인에 대한 선입견은 금물.

공정한 평가를 위해 그는 "호수가 맑아야 바로 보인다"는 경구를 새기고 있다.

이같은 기업문화가 김영사의 트레이드마크인 "원칙경영"을 뒷받침하고 있다.

출판.서점계와 독자들에게 믿을 수 있는 회사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꼭 필요하고 유익한 책만 낸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새로운 정보나 이론, 지식 등을 담은 책, 한가지라도 분명한 메시지를 지닌 책, 쉽고 간결하게 쓴 책을 골라 출간하는 거죠"

그 원칙 중에서도 가장 중시하는 것은 "베스트셀러 병을 철저히 경계하자"는 지침이다.

베스트셀러 병에 걸리면 적은 부수를 경시하고 좋은 원고도 덜 팔릴 것이라고 포기한다는 것이다.

또 어떤 것은 많이 팔릴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무분별하게 투자하고 큰 손실을 입게 된다.

"이삭 줍듯 새 길을 안내하듯" 한권씩 내다보니 오히려 히트 행진이 계속됐다.

"책에는 사소한 오류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새기던 조상의 정성과 치밀함을 따르자는 정신으로 글자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 넣어야죠"

그는 전자책 분야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종이책의 지평 또한 넓히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앗! 시리즈"도 그 중의 하나.

59권까지 나온 이 시리즈는 올해안으로 1백권을 넘어설 전망이다.

"수학이 수군수군" "물리가 물렁물렁" 등 제목부터 톡톡 튄다.

책값도 3천9백원으로 낮췄다.

또 하나는 국내 미개척 분야인 최고급 화보집을 내겠다는 것이다.

한국 최초의 아프리카 동물 사진집인 김중만씨의 "동물왕국"과 "아프리카 여정"을 펴낸 것이 한 예.

얼마전 "김희선 누드집" 사건으로 화제가 된 책도 사실은 최고급 화보 시리즈 기획물이다.

대중 스타와 시각문화의 만남인 이 시리즈에는 인기 가수 조성모 등 유명인들을 잇달아 등장시킬 계획이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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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57년 6월 3일
출생지 : 서울
학력 : 1979년 이화여대 문리과대학 수학과 졸업, 1998년 뉴욕대(New York University)대학원 석사
경력 : 1979년 평화출판사 편집부 입사, 1982~1988년 김영사 편집부장, 1989년부터 김영사 사장
포상 : 1993년 문화부장관상(공로상), 2001년 중소기업협회 우수경영인상
저서 : "바이오리듬"(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