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에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진실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1932~1982)는 기인(奇人)이었다.

음악가들 중에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가 한 둘이 아니지만 굴드같은 인물을 찾아보기는 힘들다.바흐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하기 위해 1955년 미국 뉴욕 CBS스튜디오에 나타난 그에게선 이런 기인의 풍모가 잘 드러난다.

당시 뉴욕은 더위로 땀이 나기 시작하는 6월이었다.

그런데도 굴드는 외투에 머플러를 두르고 베레모에 장갑까지 끼고 나타났다.뉴욕의 물은 마실 수 없다며 두개의 물병도 준비했다.

다른 한 손에는 다리를 고무로 만든 ''굴드의 의자''를 들고 있었다.

그는 연습이든 실제 연주든 일반적인 피아노 의자에 앉지 않고 이 ''굴드의 의자''만 이용했다.굴드는 두 손을 20분간 더운 물에 집어넣고 데우더니 몸을 앞뒤로 굽혔다 폈다하는 해괴한(?) 동작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완전히 자신의 연주에 빠져든채 콧노래로 선율을 따라가는 바람에 엔지니어들이 이 소리를 담지 않으려고 진땀을 뺐다고 한다.

굴드는 이때부터 음반녹음에만 전력하고 실제 연주무대에는 거의 서지 않았다.32세 되던 1964년 시카고 공연이 그의 마지막 무대였다.

그는 다른 음악인이나 예술가들과의 교분도 별로 없어 이런 그의 행동에 대한 오해와 억측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연주자 본연의 사명이라 할 실황연주는 제쳐두고 녹음기술로 짜깁기한 음반제작에만 주력하다니,이런 이를 어떻게 예술가라 할 수 있나''라는 식이었다.

굴드는 무대에 서지 않는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평소 그가 지인들에게 했던 얘기를 종합해보면 세인들의 비난이 너무 편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바흐의 파르티타를 무척 좋아한다.

연주회 때마다 이곡을 프로그램에 집어넣는다.

그런데 한번은 이 곡의 녹음을 마치고 다시 들어봤더니 형편없는 연주에 너무 놀랐다.

알고 보니 공연장의 꼭대기층에 있는 관객들도 들을 수 있도록 곡을 과장해 연주하는 것이 몸에 밴 탓이었다"

굴드는 이런 과장된 소리만들기 외에도 청중의 기침소리,박수소리도 싫어했다고 한다.

바흐 스페셜리스트란 평가를 받았던 만큼 그는 바흐시대 쳄발로 같은 작은 음량과 연주 분위기를 재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굴드와 같은 캐나다 출신 음악평론가 에릭 맥클린은 "굴드가 추구한 것은 완벽함"이라고 증언한다.

완벽을 추구하는 기벽이 그를 연주회장을 떠나 스튜디오 피아니스트로 만든 셈이다.

녹음기술을 바탕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추구한 지휘자 카라얀과 같은 선상에서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반론도 이 때문에 나온다.

최근 1955년 이전 청년기 굴드의 연주를 라이브로 담은 음원(音源)이 발견돼 세계 음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굴드의 실황음원으로는 처음 세상의 빛을 본 ''사건''이기 때문.

캐나다 CBC방송국을 통해 공중파로 방송됐던 그의 연주가 최신 기술로 복원돼 음반으로 공개된 것이다.

''골트베르크 변주곡''은 물론,바흐 ''이탈리아 협주곡'' ''15개의 인벤션 3부'' ''파르티타 5번'' 등 모두 7곡이 담겨있다.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음반을 통해 굴드를 만났던 음악애호가들이 청년기 굴드의 라이브 연주를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장규호 기자 sein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