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명예회장 별세] '비서들이 본 人間 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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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명예회장의 비서 라인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김재수 현대구조조정본부장-이전갑 기아자동차 부사장-이병규 현대백화점 사장 등으로 이어진다.
이후에는 수행비서인 김경배 현대자동차 미주법인 차장과 비서실의 이은봉 차장 등이 정 명예회장의 만년을 함께 했다..정 명예회장의 만년 10년을 옆에서 보좌한 김경배 차장은 미국 현지법인에서 부음을 듣고 22일 오후 귀국, 상가를 찾았다.
김 차장은 몸이 불편한 정 명예회장을 늘 옆에서 부축하면서 거동까지 도왔던 수행비서.
그는 "회장님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수행비서들을 마치 친손자처럼 대해 주셨다"고 회상했다.그는 정 명예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뗀 뒤에는 가까운 친지들을 만나며 책으로 소일했다며 "작년 2월 수행비서를 그만둘 때까지만도 정신은 맑으셨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은봉 차장은 정 명예회장의 방북길에 항상 사진기를 들고 동행한 여직원.
87년부터 정 명예회장의 사진담당 겸 수행비서를 맡아 무려 7차례나 정 명예회장과 함께 방북했다.이 차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방북 때 수행했던 일"이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업무가 카메라를 다루는 일이어서 정 명예회장이 늘 "프로"로 대해 줬다며 정 명예회장은 "섬세하고 젠틀한 분"이라고 말했다.
.1973년부터 3년간 비서로 근무한 김재수 본부장은 정 명예회장에 대한 기억을 근면과 노력으로 요약했다.그는 "조선소를 건설하던 당시 울산으로 출.퇴근하다시피해서 늘 새벽 4시까지 청운동 자택에 대기해야 했다"며 "통행금지 때문에 30분만 늦춰 달라고 하자 "젊은 친구가 무슨 잠이 그렇게 많냐"고 꾸지람을 들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정 명예회장이 외국인들과 협상이 많아지자 단어를 꼼꼼히 적어가며 영어공부를 했다며 외부 사람들이 있으면 영어를 쓰지 않지만 외국인과 단둘이 남으면 영어로 충분히 대화를 해내는 실력이었다고 전했다.
1976년부터 3년간 비서를 맡았던 이전갑 부사장은 "건물 지을 때도 잉여자재를 쓰도록 했고 비서실에서도 이면지를 사용하도록 할 정도로 검소한 분이셨다"며 그의 검소함은 모두에게 귀감이 됐다고 말했다.
16년간이나 비서로 정 명예회장을 보좌한 이병규 사장은 "지금은 얘기할 때가 아닌 것 같다"며 답답한 심경을 침묵으로 대신했다.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익치 전 회장은 이날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이후에는 수행비서인 김경배 현대자동차 미주법인 차장과 비서실의 이은봉 차장 등이 정 명예회장의 만년을 함께 했다..정 명예회장의 만년 10년을 옆에서 보좌한 김경배 차장은 미국 현지법인에서 부음을 듣고 22일 오후 귀국, 상가를 찾았다.
김 차장은 몸이 불편한 정 명예회장을 늘 옆에서 부축하면서 거동까지 도왔던 수행비서.
그는 "회장님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수행비서들을 마치 친손자처럼 대해 주셨다"고 회상했다.그는 정 명예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뗀 뒤에는 가까운 친지들을 만나며 책으로 소일했다며 "작년 2월 수행비서를 그만둘 때까지만도 정신은 맑으셨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은봉 차장은 정 명예회장의 방북길에 항상 사진기를 들고 동행한 여직원.
87년부터 정 명예회장의 사진담당 겸 수행비서를 맡아 무려 7차례나 정 명예회장과 함께 방북했다.이 차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방북 때 수행했던 일"이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업무가 카메라를 다루는 일이어서 정 명예회장이 늘 "프로"로 대해 줬다며 정 명예회장은 "섬세하고 젠틀한 분"이라고 말했다.
.1973년부터 3년간 비서로 근무한 김재수 본부장은 정 명예회장에 대한 기억을 근면과 노력으로 요약했다.그는 "조선소를 건설하던 당시 울산으로 출.퇴근하다시피해서 늘 새벽 4시까지 청운동 자택에 대기해야 했다"며 "통행금지 때문에 30분만 늦춰 달라고 하자 "젊은 친구가 무슨 잠이 그렇게 많냐"고 꾸지람을 들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정 명예회장이 외국인들과 협상이 많아지자 단어를 꼼꼼히 적어가며 영어공부를 했다며 외부 사람들이 있으면 영어를 쓰지 않지만 외국인과 단둘이 남으면 영어로 충분히 대화를 해내는 실력이었다고 전했다.
1976년부터 3년간 비서를 맡았던 이전갑 부사장은 "건물 지을 때도 잉여자재를 쓰도록 했고 비서실에서도 이면지를 사용하도록 할 정도로 검소한 분이셨다"며 그의 검소함은 모두에게 귀감이 됐다고 말했다.
16년간이나 비서로 정 명예회장을 보좌한 이병규 사장은 "지금은 얘기할 때가 아닌 것 같다"며 답답한 심경을 침묵으로 대신했다.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익치 전 회장은 이날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