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전통 바느질 문화

''조침문(弔針文)''이란 한글 고전수필이 있다.

조선 순조때 유(兪)씨부인이 지은 것인데 27년이나 삯바느질에 쓰던 바늘이 부러지자 그것을 의인화해 쓴 제문(祭文)이다.''겨울 밤에 등잔을 상대하여, 누비며 호며 감치며 박으며 공그릴 때에, 겹실을 꿰었으니, 봉미(鳳尾)를 두르는 듯, 땀땀이 떠갈 적에,수미(首尾)가 상응하고, 솔솔이 붙여 내매 조화가 무궁하다''에 이르면 바늘의 기능을 속속들이 알아 이처럼 멋지게 묘사할 사람은 다시 없을성 싶다.

여성들이 가족과 자신의 옷을 직접 지어 입었던 전통사회에서는 부녀자가 필수적으로 갖춰야할 것 가운데 하나가 바느질 솜씨였다.

왕실이나 사대부 등 특수층의 경우엔 장인을 고용했다.조선시대 서울에는 10명, 지방에는 64명의 공조(工曹)소속 침선장(針線匠)이 있었다.

궁중에는 왕실의 옷을 전담하는 상의원(尙衣院)이 따로 있고 궁녀들 중에도 왕과 왕비의 옷과 금침을 짓고 관리하는 침방(針房)나인이 별도로 있었다.

6,7세부터 궁궐에 들어가 맹훈련을 받은 장인들이다.근대이후 우리 복식이 급속하게 서구화되면서 지금 바느질기술의 전통은 거의 잊혀져 고사(枯死) 위기에 처해 있다.

다행히 옛 바느질기술을 이어 오던 몇몇 전승자가 뒤늦게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전통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지만 앞으로의 전승이 심각한 문제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바늘과 벗삼은 한평생-침선장 박광훈(朴光勳) 선생 기증전''은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1호 박광훈씨가 평생 만든 옷 2백여점을 박물관에 기증하는 특별기획전이다.철종의 사위로 개화기의 정치가였던 박영효(朴泳孝)의 손녀인 그는 우리 복식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가지고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전통바느질 기법을 계승해 일가를 이뤘다.

배냇저고리에서 수의까지 통과의례에 맞춰 한땀 한땀 꼼꼼한 손바느질로 정갈하게 만든 옷들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정감을 느끼게 된다.

한탕주의와 얕은 장삿속만 난무하는 세상에서 역경을 딛고 외곬으로 한 길을 걸어 무언가 이루어내는 장인정신을 관객들이 직접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