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내 멋대로 살자? .. 최하경 <현대택배 사장>
입력
수정
최하경
요즘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면 보보스라는 말이 간간이 거론된다.보보스라는 말만 가지고는 무슨 내용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아 나름대로 몇 가지 신문을 뒤적여 보았다.
보보스는 자본을 최고로 생각하는 부르주아와 자유로운 예술적 영혼만으로도 끼니를 굶을 수 있었던 보헤미안을 합쳐놓은 말이라고 한다.
어림짐작만으로도 재력과 지성,예술적 영역까지 두루 갖춘 그럴싸한 사람이 그려진다.잘은 모르겠지만 자라나는 청소년이나 젊은 세대들의 이상형으로 자리매김한다고 할지라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인다.
되짚어보면 각 시대마다 그때를 대표하는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1990년대 이후에는 X세대니,n세대니 정신없이 많은 세대들이 출현해 인터넷과 디지털시대를 실감하게끔 했다.또 그때마다 그런 부류들을 표방하는 아류가 생겨나기도 했다.
가만히 보면 과거에 비해 그런 유행의 주기가 빨라지는 듯하다.
그렇다면 삶을 지탱하는 가치관의 변화도 그만큼 빨라진다고 추측할 수 있는 것일까.아니면 예전만큼 진지하게 삶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유년기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몸이 자라듯 마음과 정신도 함께 자라 자기 스스로의 정체성을 깨닫게 될 때까지 끊임없이 방황하며 사는 것 같다.
남들이 보는 나이가 아무리 성인의 나이가 되었다고 한들 본인 스스로 느끼는 나이는 언제나 유년시절 그대로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가정을 이끌어가고 사회를 짊어지고 가는 중요한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된다.보릿고개를 겪은 세대이건,장발 단속을 피해 다니고 민중가요를 불렀던 세대이건,서태지라는 가수에 흥취하고 인터넷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세대이건 간에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자신이라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보보스라고 불리는 멋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화제가 된다고 해서 막연히 그들을 동경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우리 모두 항상 각자의 삶에 당당하게 임해야 할 것이다.
요즘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면 보보스라는 말이 간간이 거론된다.보보스라는 말만 가지고는 무슨 내용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아 나름대로 몇 가지 신문을 뒤적여 보았다.
보보스는 자본을 최고로 생각하는 부르주아와 자유로운 예술적 영혼만으로도 끼니를 굶을 수 있었던 보헤미안을 합쳐놓은 말이라고 한다.
어림짐작만으로도 재력과 지성,예술적 영역까지 두루 갖춘 그럴싸한 사람이 그려진다.잘은 모르겠지만 자라나는 청소년이나 젊은 세대들의 이상형으로 자리매김한다고 할지라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인다.
되짚어보면 각 시대마다 그때를 대표하는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1990년대 이후에는 X세대니,n세대니 정신없이 많은 세대들이 출현해 인터넷과 디지털시대를 실감하게끔 했다.또 그때마다 그런 부류들을 표방하는 아류가 생겨나기도 했다.
가만히 보면 과거에 비해 그런 유행의 주기가 빨라지는 듯하다.
그렇다면 삶을 지탱하는 가치관의 변화도 그만큼 빨라진다고 추측할 수 있는 것일까.아니면 예전만큼 진지하게 삶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유년기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몸이 자라듯 마음과 정신도 함께 자라 자기 스스로의 정체성을 깨닫게 될 때까지 끊임없이 방황하며 사는 것 같다.
남들이 보는 나이가 아무리 성인의 나이가 되었다고 한들 본인 스스로 느끼는 나이는 언제나 유년시절 그대로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가정을 이끌어가고 사회를 짊어지고 가는 중요한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된다.보릿고개를 겪은 세대이건,장발 단속을 피해 다니고 민중가요를 불렀던 세대이건,서태지라는 가수에 흥취하고 인터넷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세대이건 간에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은 결국 자신이라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보보스라고 불리는 멋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화제가 된다고 해서 막연히 그들을 동경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우리 모두 항상 각자의 삶에 당당하게 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