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부 통화정책 개입 말라" .. 한은, 韓.美제도 비교

최근 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금리에 관해 자주 언급하자 한국은행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인 통화정책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독립성 훼손이라는 주장이다.한은이 28일 이례적으로 내놓은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한국은행, 어떻게 다른가"라는 내부 보고서는 이런 불만을 담고 있다.

이로 인해 경기해법을 둘러싼 논쟁도 가열될 조짐이다.

◇ FRB의 신뢰성 =한은은 보고서에서 미국 중앙은행인 FRB의 신뢰성은 행정부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이 제도와 관행으로 보장돼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FRB는 이를 바탕으로 지난 80년대 고금리 등 긴축정책을 실시, 행정부가 포기했던 물가 관리의 고삐를 잡아 국민적인 신뢰를 얻었다는 것이다.

FRB는 법적으로 행정부가 아닌 의회의 감시를 받지만 정책이나 조직운영에는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또 의장의 임기는 4년(현재 그린스펀 의장은 87년이후 5연임), 6명의 이사는 대통령 임기와 무관하게 14년(단임)을 보장받는다.특히 행정부는 FRB의 금리 인상 등에 대해 일절 ''노 코멘트''다.

지난해 FRB가 수차례 금리를 올렸어도 재무장관과 대통령경제자문회의 의장의 공동명의로 ''행정부는 FRB의 독립성을 존중하며 FRB가 취하는 조치를 승인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 한은의 현실 =한은은 지난 99년 개정 한은법에서 명목상으론 중앙은행 독립이 보장됐지만 내용면에선 정부가 개입할 길이 마련됐다고 지적했다.이는 정부주도 경제운용이 오랜기간동안 지속돼 정부가 통화정책에 개입하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란 분석이다.

한은은 정부의 개입 근거로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에 대한 재의(再議)요구권 △재경부 차관의 금통위 열석발언권(의결권은 없으나 발언권은 행사) △정부의 예산승인권 △감사원 감사 등을 꼽았다.

한은 총재를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사전에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한 것도 중앙은행 독립성을 해치는 장치라는 주장이다.

보고서는 또 고위공직자들의 금리에 대한 언급이 잦다는 등 통화정책에 대한 개입 시비도 제기했다.

지난해 2월 당시 이헌재 재경부장관은 "장기 금리가 대우사태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기 전에 단기금리를 인상하면 금리체계의 왜곡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5월에는 이기호 경제수석이 "장단기 금리격차 조정을 위한 콜금리 인상은 적절치 않다"며 "한은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압박을 가했다는 주장이다.

강봉균 KDI 원장은 지난 27일 강연에서 노골적으로 경기부양책과 함께 금리를 낮춰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들의 이같은 ''통화정책 훈수''는 한은의 소극적인 자세에 기인하는 것 아니냐는 자성론이 한은 내부에서 제기되기도 한다.한 관계자는 "그동안 한은이 정부와의 마찰을 극도로 피해 왔고 통화정책을 훼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치 않은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