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 "정부연구소 싫다" .. 떠나는 과학 엘리트연구원

과학기술계 정부출연 연구소들이 침몰 위기에 놓여있다.

상당수 연구원들은 기회만 생기면 대학이나 기업,해외로 자리를 옮기려 하고 있으며 외국 연구진도 선뜻 국내로 발길을 돌리지 않고 있다. 올들어 2월까지 공공.산업.기초기술연구회 산하 19개 연구기관에서만 1백1명이 퇴직했다.

정부 정책의 일관성 결여와 비전 부족,연구소 운영의 비효율성 등이 이같은 현상을 일으킨 주 요인으로 꼽힌다.

연구비 카드제 등 최근 몇몇 정부정책이 과학자의 자존심을 짓밟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연구비 카드제 도입=과학기술부는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의 연구비 집행과정을 투명하게 한다는 취지로 ''연구비 카드제''를 도입했다.

이에 대해 많은 과학자들은 "정부가 과학자를 믿지 못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 연구원은 "대학의 경우 예산이 교수 개인 통장에 입금되기 때문에 카드제는 오히려 대학에 필요하다"며 "정부출연 연구소에서는 모든 자금이 회계과를 통해 처리되기 때문에 카드제의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또 다른 연구원은 "과학자를 사기꾼 취급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기관고유사업비 지급 보류=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화학연구원 에너지연구원 등 19개 기관은 아직까지 올해 기관고유사업비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학자금 무상지원 폐지 등에 대한 노조의 동의서를 받아와야 사업비를 줄 수 있다는 정부 방침 때문이다.연구소 관계자들은 구조조정 문제를 연구비와 연계시킨 정부측의 태도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기관고유사업비는 연구소 설립목적에 부합하는 연구에 대해 국가가 직접 지원하는 자금을 말한다.

◇벤처창업 제도=벤처기업 창업을 희망하는 연구원이 늘고 있지만 각 기관마다 기준은 제멋대로다.

KIST는 일정한 원칙 없이 30∼50%의 지분참여를 요구한 반면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지분참여 조건이 전혀 없다.

또 KIST 등은 연구원 신분으로 벤처기업 사장이 될 수 있지만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겸직이 불가능하다.

국가연구비를 지원받아 기술을 개발한 대학 소속의 연구원들은 무료로 기술을 이전할 수 있어 형평성 문제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정책결정 구조=과학기술예산의 종합조정기능이 취약하다.

생명공학 연구만 해도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 보건복지부로 쪼개져있고 대학 연구비 지원은 과기부와 교육부가 분담하고 있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출연연구소의 상당수가 곧바로 상품화가 가능한 단기적 연구과제에 집착해 원천기술이나 기초과학 분야의 육성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과학기술 자문회의의 역할과 위상의 재정립은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부처간 의견조정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거나 아니면 과학기술부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