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이민가게 만드는 교육 .. 유안진 <시인>

"아래 위 구별없이 하는 짓들 봐라! 술 안마시고 배겨낼 수 있어"

길가다가 들린 고함이었다."마흔만 되더라도 이민갈텐데…"

이런 말도 듣는다.

그것도 6·25,4·19,5·16을 맨몸으로 겪어내며 늙어온 어른들로부터.얘기의 근거는 대강 이렇다.

지난 1960∼1970년대에는 ''못 살아서'' ''독재가 싫어서'' 이민 가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지금 이민을 원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란다.이러다간 이 나라를 지탱해 줄 브레인(brain)들이 죄다 빠져나가 버리지 않을까 어찌 염려가 안되랴.

물론 우리의 교육현장은 갈수록 절망적이다.

그럼에도 개혁은 커녕 개악으로 줄달음질하는 것으로 다들 느끼니까.그러나 과연 그것만이 사유였을까.

예가 좀 부적절할진 몰라도,자살하는 사람들의 자살사유가 단 하나가 아니듯이,앞 뒤 좌우로 죄다 막혔다고 느낄 때,더 이상 어느 한가지의 희망도 없다고 여길 때의 최후의 길이 아니던가.

이민의 사유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것 저것 종합적으로 다 절망적이고 혐오스러워,더 이상 견디고 싶지 않거나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뭐라뭐라해도 1960∼1970년대보다는 풍족해졌고,사회상황도 나아지지 않았느냐고 하자,겉보기는 그렁저렁 민주화가 된 듯해도,속을 들여다 보면 그게 아니란다.

오히려 더 경직됐고,내일을 걸어볼만한 데가 전혀 없다는 수십번의 진단결과 내린,마지막 카드요 막다른 생존처방이란다.

엊그제는 술 취한 취객이 시내버스에 오르자마자, 운전기사에게 발길질을 퍼붓는 장면이 방송됐다.

술 마시고 면허정지 당한 제 차를 몰아 파출소로 돌진한 사건은 이미 여러 건 있었다.

공권력에 대한 이런 도전은,공공질서는 고사하고 국가권위에 대한 경멸이다.

지위 고하 없이 공직자를 신뢰하거나 희망을 거는 이는 아무도 없단다.

연간 술소비량 1위가 대한민국이다.

어떤 선진국이 밤새도록 술 마시라고 심야 술집영업을 허용하는가?

전 국민을 알코올중독자로 만들자는 정책 아닌가.

얼핏 무질서한 듯한 미국에서도,술을 안파는 날이나 시간대가 있는 주(州)가 대다수인데,우리는 어쩌자고 이러는가.

술김에 불지르고,가족과 미운 사람 살해하고,술김에 아무나 죽으라고 폭탄 만들어 던지고,술 마시다가 불타죽는 사건들이 생긴다.

유치원 유아들의 화재 참사,인천 고교생들의 술집 화재참사….

그럼에도 어느 것 하나 개선되긴 커녕 술집은 늘어만 가니,어찌 부모들이 자녀 위해 이민을 안 떠나고 배겨낼 수 있겠는가.

최근 소방관 순직과 부상소방관들의 일만 해도 그렇다.

위험수당이 월 2만원이라니!

정치가들은 수백억원을 먹어도 ''정치자금''이라 하여 합법이고,목숨을 담보한 소방관의 위험수당이 하루도 아니고 한달에 2만원이라니?

세계 어느 나라 소방관의 목숨 값을 월 2만원으로 계산한 나라가 있기는 한가.

어찌 이런 사건들 뿐이랴.

안심하고 먹을 식품,마실 물,걸어서나,타고 다닐 것들에 안전한 것이 있기는 있는가?

골목길 불법주차,안전불감증,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에서 전 국민적 총체적인 무수한 문제투성이,언제 어느 것이 터져서 그 날벼락의 희생자가 될 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이 사회에서,그 누가 제 자식을 키우고 싶겠는가.

"고로쇠나무 수액 채취장면을 보면서 우리의 잔혹성에 환멸을 금치 못한다는 이들! 아니 우리민족이 혐오스러워 못견디겠다는 이들! 야생동물들만 잡아먹는 야만족….지하도마다 뒹구는 노숙자들만 늘어가는 것이 이 나이껏 애국해온 보답인데,누가 생존을 위한 탈출이민을 나무라는가"라고도 한다.

온 국민이 술 취한 주정뱅이란다.

안 마시고는 못배기고,안 마셔도 마신거나 다름없이 알코올중독자들이란다.

그럼에도 마음놓고 말 못하는 도청에다,제 이익에 방해되면 어떤 해코지도 불사하는 술 취한 풍토가 무서워란다.

어느 하나도 양심적이고 교육적인 것이 없다는 결론 끝에,고학력 전문직 중산층들일 수록 떠나게 만든단다.정든 제 나라,피땀 흘려 이룩한 모든 것 내던지고,누군들 좋아서 제나라를 등지고,가족까지 이끌고,어떤 보장도 없는 모험을 감행하겠느냐는 반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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