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일의 그림읽기] (30.끝) 김은호 '황후대례복(皇后大禮服)'

이 그림은 우리나라 최후의 어용화사(御容畵師)인 이당 김은호(1892~1979) 화백이 1970년 부인을 모델로 제작한 이당 인물화의 대표작이다.

이당은 이보다 앞선 1952년에 역시 부인을 모델로 ''어여머리의 여인''이란 작품을 발표했다.어여머리의 여인에 황후대례복을 입힌 작품이 바로 이 그림이다.

화려한 대례복의 색상이며 섬세한 표현이 이당 인물화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고증을 거쳐 재현한 어여머리의 사실적인 표현은 우아하기까지 하다.황후대례복은 왕비로 간택된 여성이 결혼식 때 입는 옷.

이 옷을 입어야 비로소 중전마마 소리를 듣는다.

이당은 이 작품 제작보다 35년전인 1935년에 역시 부인을 모델로 황후대례복을 그린 일이 있다.이당은 1912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학교인 ''경성 서화미술회'' 2기생으로 입학했다.

입학할 때 심전 안중식에게 ''당미인도''를 모사해보라는 것과 소림 조석진이 자신이 담뱃대를 물고 서 있는 모습을 그려보라는 시험을 치렀는데 그 때 실력을 인정받아 학교를 5개월 늦은 8월에 들어갔다.

서화미술회에 들어가자마자 송병준의 ''영적도''라는 저술집에 넣을 초상화를 기가 막히게 그린 것이 알려져 ''신이 내린 그림''이라며 장안의 화제가 됐다.때마침 일본화가가 고종의 어진을 모시고 있었는데 이걸 안타깝게 여긴 전의(典醫)김창유의 애국심이 고종을 가까이 모시던 상궁의 마음을 움직였다.

김창유가 상궁에게 서화미술회에 김은호라는 천재화가가 입학해 화명(畵名)을 떨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고종에게 이같은 사실을 고하도록 부탁해 이당이 임금의 초상을 그릴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상궁으로부터 이같은 사실을 전해들은 고종은 그렇지 않아도 일본화가의 손에 자신의 초상이 그려지는 게 못마땅하던 터였는데 전의의 제안이 주효해 이당이 어용화사가 된 것이다.

이당은 서화미술회에 입학한 지 21일만에 화가 최고영예인 어용화사가 됐다.

화단에서 이당을 인물화의 1인자로 꼽는 것은 단지 고종 순종의 어진을 모셨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민영휘 성춘향 이순신 김연국 김규진 백낙준 박종화의 인물화가 그의 ''내림 그림''의 신기(神技)를 보여주고 있어서다.

월간 아트인컬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