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총액제한 부활' 부작용 속출

지난달 부활된 출자총액 제한제도 때문에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출자총액을 순자산(자기자본-계열사 출자분)의 25%로 제한한 이 제도로 인해 주요 대기업들이 미래산업에 대한 진출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기존 사업을 헐값에 매각하고,일부 기업은 경영권까지 위협받고 있다는 것.30대 계열 기업집단이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에 보고한 계열사별 출자현황에 따르면 삼성의 경우 삼성전자의 대주주인 삼성물산이 출자한도를 수백억원 가량 초과했다.

추가 지분 확보가 어려운 것은 물론 기존 출자금액도 줄여야 하는 형편이다.

삼성물산이 출자제한에 걸리자 삼성그룹은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삼성측이 공식적으로 확보한 의결권 비율은 삼성물산과 이건희 회장 지분 등을 합쳐 9%에 불과하다.

계열사 중 가장 많은 6%의 지분을 보유한 삼성생명을 비롯 금융계열사들은 공정거래법상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돼 있다.

반면에 외국인 투자가 꾸준히 늘면서 외국인의 의결권 비율이 65%선까지 높아져 언제든지 삼성의 경영권 행사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상황이다.SK(주)는 출자총액 한도 초과액이 2조원을 넘는다.

SK텔레콤도 1조원 이상 한도를 넘어선 상태라고 공정거래위원회에 보고했다.

SK그룹은 이처럼 출자총액이 한도를 크게 초과함에 따라 최근 동양카드를 인수하려던 시도를 포기했다.SK는 일본 이동통신회사 NTT도코모와의 전략적 제휴를 위한 SK텔레콤 지분 매각 협상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SK텔레콤의 대주주인 SK(주)가 내년 3월 말까지 출자총액 한도 초과분을 정리해야 한다는 점을 간파한 NTT도코모측이 지분을 헐값에 인수하기 위해 협상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차세대 영상이동통신인 IMT-2000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LG의 경우도 출자총액 제한에 걸려 있다.

LG텔레콤은 IMT-2000 사업에 최소한 1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지만 대주주인 LG전자는 이미 3천억원 가량 출자총액 한도를 초과했다.

계열사 지분을 대량 매각하지 않으면 추가로 출자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현대자동차 그룹은 현대차가 출자총액 한도를 2천억원 이상 초과했다.

나머지 계열사 중 일부도 한도를 넘어섰다.

세계적 자동차 업체들의 수익사업 대부분이 금융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보험과 카드사업 등 금융업에 진출하는 게 필수지만 출자총액 제한 때문에 엄두도 못내고 있다.

두산중공업을 인수한 (주)두산은 출자총액이 1천억원 가량 한도를 넘어섰다.

대한생명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한화의 경우도 해외합작 파트너와의 출자 분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출자총액 한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출자총액 한도제로 인해 대한생명 등 부실 부문의 매각이 어려워지면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공정위는 부실기업 인수시 예외를 적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기업들은 사후의 예외 인정을 기대해 기업 인수를 추진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삼성경제연구소의 최인철 연구원은 "법인이 중심이 돼 투자하는 한국의 현실에는 출자총액 제한이 맞지 않는 제도"라며 자율적 시장규제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희식·김성택·김용준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