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ization Impact! 외국자본] (5) 외국계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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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계은행의 파워 ]
"한국의 첫 외국인 시중은행장인 윌프레드 호리에 제일은행장은 한국정부의 부실기업에 대한 대출요구를 거부했다. 그는 제일은행의 한국인 참모들조차 ''정부에 협조하는게 좋겠다''고 건의했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호리에 행장은 ''No''라고 말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공언한다. 호리에 개혁은 한국 금융산업의 새 기준이 되고 있다" 미국의 경영전문지인 비즈니스 위크는 최근호에서 외자계로 넘어간 제일은행의 변신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글로벌 시각에서 보면 제일은행은 한국의 고질병인 관치경제를 여지없이 깨고 진정한(?) 상업은행으로 변신하는 ''파이어니어''인 셈이다.
비즈니스 위크뿐만 아니다.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도 같은 시각이다.
"호리에 행장의 글로벌라이제이션 실험은 곧 외자계로 탈바꿈할 국민-주택은행 합병은행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며 이들(외자계 은행들)은 앞으로 한국의 소매금융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다"(파이낸셜 타임스 5월8일자)
해외에도 정반대 시각이 있다."한국은 세계화라는 이름의 국제 투기자본에 완전히 노출돼 버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하랄드 슈만 ''세계화의 덫'' 저자)
제일은행은 지난 1월 금융감독원이 주도한 산업은행의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 회사채 인수 협조를 거절했다.
수익성이 없는 사업에 뛰어들 수 없다는 명분이었다.그 일이 있은지 한달 뒤인 2월, 이근영 금감위원장과 호리에 행장이 모처에서 만났다.
이 위원장은 불쑥 "나는 덩치가 왜소하지만 마음은 아주 넓은 사람이다"고 말을 던졌다.
호리에 행장은 정부의 ''말''을 듣지 않은데 대한 일종의 ''경고성 사인''으로 이해했다.
이 만남이 있은지 얼마 안돼 금감원은 호리에 행장에게 실제로 ''경고''를 했다.
임원들에게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을 주기로 결정한 뒤 이를 즉시 공시하지 않았으며 가격이 적정하지 않다는게 이유였다.
제일은행은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임원들에게 스톡옵션 60만주를 주기로 결의했다.
다른 시중은행이라면 이미 여론재판에 회부되는 등 난리가 났을 일이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제일은행에 대해 이미 통제권을 상실했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은행 인사에도 외국자본의 입김이 세게 작용한다.
한미은행장이 신동혁 행장에서 씨티은행 출신인 하영구씨로 교체될 예정인 것이 그런 사례다.
한미은행 노조는 행장 교체와 관련, "대주주인 칼라일이 행장 교체를 막후에서 조정하는 등 지나치게 은행 경영에 간섭하고 있다"면서 문제를 제기했다.
노조는 "칼라일은 장기전략도, 선진 금융기법의 전수도 없이 단기 시세 차익에만 눈이 멀어 지배구조 개편 논리로 은행 경영에 간섭하는 등 투기자본으로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오는 8월31일로 예정돼 있는 국민-주택은행 합병 행장 선출문제도 금감위나 재경부보다 네덜란드계 투자은행인 ING와 미국계 골드만 삭스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과거 모피아(재무부 관료집단의 파워를 마피아에 빗댄 말)가 좌지우지해온 한국 금융계에서 외자 파워가 득세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관료와의 충돌뿐만이 아니라 곳곳에서 미묘한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있지만 대세는 이미 ''글로벌 파워''쪽으로 기우는 모습이다.
공과금 수납문제를 둘러싼 제일은행 내부이견도 상징적인 케이스다.
"월말이면 이 업무로 일선 영업이 마비될 정도로 수익에 비해 인력낭비가 심한 ''돈 안되는 일''이므로 포기하자"는 주장과 "고객편의와 은행의 공공성을 고려해서 계속해야 한다"는 시각이 맞섰다.
당장 포기할 경우 고객여론이 악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우세해 일단 존속키로 했지만 ''당분간''이라는 감이 짙다.
계좌유지 수수료를 징수할 때도 내부 의견이 분분했다.
국내 금융계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돌고 있다.
"많은 은행이 추가로 불량채권 발생에 고민하고 있을 때 제일은행은 정부의 부실채권 보전약속에 ''땅짚고 헤엄치기식'' 경영으로 흑자를 냈다"(A은행 K씨)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현재 모든 해외펀드는 본질적으로 투기적이어서 산업육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수익만을 목표로 한다"면서 "제일은행 케이스는 예고편이다. 국민-주택 합병은행까지 투기성 해외자본에 넘어가면 정부의 정책영역은 더욱 축소될 것이고 기업금융은 위축될게 뻔하다"고 우려했다.기획취재부 오춘호.조일훈.장경영 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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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첫 외국인 시중은행장인 윌프레드 호리에 제일은행장은 한국정부의 부실기업에 대한 대출요구를 거부했다. 그는 제일은행의 한국인 참모들조차 ''정부에 협조하는게 좋겠다''고 건의했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호리에 행장은 ''No''라고 말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공언한다. 호리에 개혁은 한국 금융산업의 새 기준이 되고 있다" 미국의 경영전문지인 비즈니스 위크는 최근호에서 외자계로 넘어간 제일은행의 변신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글로벌 시각에서 보면 제일은행은 한국의 고질병인 관치경제를 여지없이 깨고 진정한(?) 상업은행으로 변신하는 ''파이어니어''인 셈이다.
비즈니스 위크뿐만 아니다.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도 같은 시각이다.
"호리에 행장의 글로벌라이제이션 실험은 곧 외자계로 탈바꿈할 국민-주택은행 합병은행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며 이들(외자계 은행들)은 앞으로 한국의 소매금융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다"(파이낸셜 타임스 5월8일자)
해외에도 정반대 시각이 있다."한국은 세계화라는 이름의 국제 투기자본에 완전히 노출돼 버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하랄드 슈만 ''세계화의 덫'' 저자)
제일은행은 지난 1월 금융감독원이 주도한 산업은행의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 회사채 인수 협조를 거절했다.
수익성이 없는 사업에 뛰어들 수 없다는 명분이었다.그 일이 있은지 한달 뒤인 2월, 이근영 금감위원장과 호리에 행장이 모처에서 만났다.
이 위원장은 불쑥 "나는 덩치가 왜소하지만 마음은 아주 넓은 사람이다"고 말을 던졌다.
호리에 행장은 정부의 ''말''을 듣지 않은데 대한 일종의 ''경고성 사인''으로 이해했다.
이 만남이 있은지 얼마 안돼 금감원은 호리에 행장에게 실제로 ''경고''를 했다.
임원들에게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을 주기로 결정한 뒤 이를 즉시 공시하지 않았으며 가격이 적정하지 않다는게 이유였다.
제일은행은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임원들에게 스톡옵션 60만주를 주기로 결의했다.
다른 시중은행이라면 이미 여론재판에 회부되는 등 난리가 났을 일이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제일은행에 대해 이미 통제권을 상실했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은행 인사에도 외국자본의 입김이 세게 작용한다.
한미은행장이 신동혁 행장에서 씨티은행 출신인 하영구씨로 교체될 예정인 것이 그런 사례다.
한미은행 노조는 행장 교체와 관련, "대주주인 칼라일이 행장 교체를 막후에서 조정하는 등 지나치게 은행 경영에 간섭하고 있다"면서 문제를 제기했다.
노조는 "칼라일은 장기전략도, 선진 금융기법의 전수도 없이 단기 시세 차익에만 눈이 멀어 지배구조 개편 논리로 은행 경영에 간섭하는 등 투기자본으로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오는 8월31일로 예정돼 있는 국민-주택은행 합병 행장 선출문제도 금감위나 재경부보다 네덜란드계 투자은행인 ING와 미국계 골드만 삭스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과거 모피아(재무부 관료집단의 파워를 마피아에 빗댄 말)가 좌지우지해온 한국 금융계에서 외자 파워가 득세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관료와의 충돌뿐만이 아니라 곳곳에서 미묘한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있지만 대세는 이미 ''글로벌 파워''쪽으로 기우는 모습이다.
공과금 수납문제를 둘러싼 제일은행 내부이견도 상징적인 케이스다.
"월말이면 이 업무로 일선 영업이 마비될 정도로 수익에 비해 인력낭비가 심한 ''돈 안되는 일''이므로 포기하자"는 주장과 "고객편의와 은행의 공공성을 고려해서 계속해야 한다"는 시각이 맞섰다.
당장 포기할 경우 고객여론이 악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우세해 일단 존속키로 했지만 ''당분간''이라는 감이 짙다.
계좌유지 수수료를 징수할 때도 내부 의견이 분분했다.
국내 금융계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돌고 있다.
"많은 은행이 추가로 불량채권 발생에 고민하고 있을 때 제일은행은 정부의 부실채권 보전약속에 ''땅짚고 헤엄치기식'' 경영으로 흑자를 냈다"(A은행 K씨)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현재 모든 해외펀드는 본질적으로 투기적이어서 산업육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수익만을 목표로 한다"면서 "제일은행 케이스는 예고편이다. 국민-주택 합병은행까지 투기성 해외자본에 넘어가면 정부의 정책영역은 더욱 축소될 것이고 기업금융은 위축될게 뻔하다"고 우려했다.기획취재부 오춘호.조일훈.장경영 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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