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테크노믹스'] '떠오르는 e-R&D'

IT(정보기술)가 연구개발 효율성과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시제품 등 갖가지 모의실험을 통해 연구에서 개발에 이르는 시간과 비용을 단축시키는 것은 단순한 하나의 예일 뿐이다. 제약산업 등 경쟁이 치열한 산업분야에서 이런 변화는 경쟁의 양상을 바꾸기도 한다.

IT는 또 시간과 공간적 제약없이 지식과 정보의 유통을 촉진하고 접근가능성을 높여 기술혁신의 원천이 되는 지식기반 자체를 확대시켰다.

다양한 기술이전이나 협력방식이 등장하고 있고 가상(virtual)기업과 유사한 가상 연구센터나 가상 리서치파크 등이 설립되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포레이와 룬드발(Foray and Lundvall)은 생산방식 혁명과 함께 연구개발에 미친 이런 변화들이 IT가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주요 채널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인지 최근에 IT로 인한 연구개발의 패턴 변화는 "e-R&D(연구개발)"라는 새로운 개념을 등장시키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e-R&D가 IT로 인한 연구개발 방식의 변화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마케팅을 비롯한 유통과 상거래 차원에 집중돼 온 e비즈 거품과 한계를 드러내면서 기업들은 비로소 기업내부의 e-변환(transformation)이라는 본질적 문제로 눈을 돌리고 있다.

경영전략과 생산과정 전반에 걸쳐 실질적인 e-변환이 추진될 경우 기업들의 기술전략 역시 근본적 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우선 오프라인 산업의 각종 기술들이 하드웨어부터 "언번들링(unbundling)"되는 추세가 예고되고 있다. 1969년 IBM의 언번들링 정책 이후 소프트웨어가 독자적 시장을 갖게 돼 컴퓨터 하드웨어보다 더 큰 산업으로 성장한 것과 같은 논리가 오프라인 산업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생산라인 자체와 생산라인을 움직이는 기술이 분리돼 극단적으로 생산라인은 실비나 무료로 제공되고 이를 움직이는 기술이 부각된다는 얘기다.

아웃소싱이라는 이름으로 제조부문이 분리된다든지 기술전문회사들이 등장하는 것은 이런 흐름의 서곡에 불과하다.

오프라인 기업들의 e-변환이 기술 자체를 조합하고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진전될 경우 기업들의 기능별 분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 뿐이 아니다.

특정 업종이나 제품에 해당하는 기술들을 끝까지 분류하다 보면 결국 만나게 되는게 요소기술들이다.

이것이 하나의 플랫폼(platform)을 형성하고 자유자재로 조합되는 방식으로 기술이라는 콘텐츠의 디지털화가 실현된다면 그 응용범위는 특정 업종이나 제품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기술 개발 못지 않게 이업종간 기술들의 융합이 새로운 혁신을 이끌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e-R&D는 연구개발 방식의 변화를 뛰어 넘어 기술의 운용시스템 자체의 변화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기업구조나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만큼 정부도 기업도 새로운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전문위원 / 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