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이남기 위원장의 강공

지난 4월20일 한국광고주협회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을 초청,강연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 위원장은 외국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행위가 국익에 반할 경우 강력하게 대처하겠다고 역설했다.그는 한국이 연간 1억달러씩 수입하는 흑연전극(고철 용해 때 사용하는 물질)을 예로 들며 "국제 담합을 벌인 7개 해외업체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 단계인 만큼 국내법을 역외 적용할 지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법을 역외 적용하는 첫 사례인 만큼 전 언론은 이 발언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그러나 한달도 채 못돼 이 위원장의 발언은 매우 부적절하고도 신중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조사를 직접 담당하고 있는 허선 정책국장은 "위원장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한 얘기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조사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국내법을 적용해 처벌할지 여부도 전혀 결정된바 없다"며 위원장의 발언에 직격탄을 날렸다.

허 국장이 위원장의 공식 발언을 1백80도 뒤집은 이유는 뭘까.공정위의 한 직원은 담합조사 진행상황을 말하는 것 자체가 국익에 반할 뿐 아니라 국제 관례에도 벗어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그는 "외국기업과 일종의 게임을 펼치고 있는데 상대에게 미리 패를 보여줘서야 이길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이 위원장의 ''앞서나가는 발언''은 이것 만이 아니다.지난달 16일에는 경기활성화를 위해 상반기중 30대 그룹에 대한 조사를 자제하겠다던 연초의 공언을 뒤집고 5월초부터 두산 등 8개 그룹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국에는 위원장의 발언을 무마하기 위해 비상이 걸렸다.

고민 끝에 해당 기업의 기초자료를 수집하는 ''예비조사''기간을 6월말까지로 늘리고 ''현장조사''는 하반기로 미뤄 ''5월중 조사는 하되 실제조사는 하반기로 늦추는'' 꾀를 동원하게 됐다.

관계자는 "사태를 수습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고 토로했다.내부 조율도 거치지 않은 사안을 함부로 얘기할 때 생기는 대내외적인 혼란을 위원장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오상헌 경제부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