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터닝포인트] 성석경 <삼성중공업 상무> .. 강단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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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의 성석경(43) 상무.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알아주는 첨단기술 분야의 전문가다.삼성그룹내 기술상을 두번씩이나 수상했으며 1백80여건에 달하는 국내외 특허를 출원했다.
그의 직장생활을 돌이켜 보면 중요한 터닝포인트(전환점)가 두번이나 있었다.
지난 86년 삼성중공업 대리 시절.조선경기 침체여파로 포항제철 광양제철소에 파견돼 컨베이어 시스템을 깔던 때였다.
하지만 여기 저기서 암초에 부딪쳐야 했다.
가장 큰 난점은 국내에 제대로 된 공장 자동화 시스템 소프트웨어가 없었던 것.일본이나 미국의 소프트웨어를 눈치껏 배껴써야 했다.
성 상무는 "능력의 한계를 느껴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결국 과감히 사직서를 내고 미국 디트로이트주로 유학 길에 올랐다.29세 때였다.
디트로이트 웨인 주립대에서 컴퓨터공학 석사과정을 6개월 정도 밟은 후 텍사스주 A&M대로 옮겨 3년만인 지난 90년 가을, 전력제어 시스템관련 박사학위를 받았다.
두번째 기로에 선 시점이었다.
고국이나 미국의 대학강단에 서느냐, 영원한 엔지니어로 남느냐는 갈림길이었다.
국내외 대학으로부터는 자리를 비워놨다는 소식이 수시로 날아왔고 대덕연구소 설립을 추진중이던 삼성그룹에선 다시 들어오라는 요청이 왔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엔지니어로서의 길을 택했다.
엔지니어로서의 존재이유를 재다짐한 그는 92년 귀국, 삼성중공업에 과장 3년차로 재입사했다.
96년 그의 손을 거쳐 운항자동화 시스템이 갖춰진 첫배가 건조됐으며 이후 올 4월말 기준으로 총 1백척이 건조, 인도됐다.현재 성석경 상무는 디지털 컨트롤 사업팀장을 맡고 있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알아주는 첨단기술 분야의 전문가다.삼성그룹내 기술상을 두번씩이나 수상했으며 1백80여건에 달하는 국내외 특허를 출원했다.
그의 직장생활을 돌이켜 보면 중요한 터닝포인트(전환점)가 두번이나 있었다.
지난 86년 삼성중공업 대리 시절.조선경기 침체여파로 포항제철 광양제철소에 파견돼 컨베이어 시스템을 깔던 때였다.
하지만 여기 저기서 암초에 부딪쳐야 했다.
가장 큰 난점은 국내에 제대로 된 공장 자동화 시스템 소프트웨어가 없었던 것.일본이나 미국의 소프트웨어를 눈치껏 배껴써야 했다.
성 상무는 "능력의 한계를 느껴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결국 과감히 사직서를 내고 미국 디트로이트주로 유학 길에 올랐다.29세 때였다.
디트로이트 웨인 주립대에서 컴퓨터공학 석사과정을 6개월 정도 밟은 후 텍사스주 A&M대로 옮겨 3년만인 지난 90년 가을, 전력제어 시스템관련 박사학위를 받았다.
두번째 기로에 선 시점이었다.
고국이나 미국의 대학강단에 서느냐, 영원한 엔지니어로 남느냐는 갈림길이었다.
국내외 대학으로부터는 자리를 비워놨다는 소식이 수시로 날아왔고 대덕연구소 설립을 추진중이던 삼성그룹에선 다시 들어오라는 요청이 왔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엔지니어로서의 길을 택했다.
엔지니어로서의 존재이유를 재다짐한 그는 92년 귀국, 삼성중공업에 과장 3년차로 재입사했다.
96년 그의 손을 거쳐 운항자동화 시스템이 갖춰진 첫배가 건조됐으며 이후 올 4월말 기준으로 총 1백척이 건조, 인도됐다.현재 성석경 상무는 디지털 컨트롤 사업팀장을 맡고 있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