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택선의 '경제 다이제스트'] '조정실패'땐 경기후퇴할수도

최근 몇 차례에 걸친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 조정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기의 연착륙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다.

과연 경기가 바닥을 쳤는지에 대해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우리나라의 경우도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한숨은 돌렸다고 하지만,체감경기가 여전히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위기 재발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위기와 경기후퇴를 설명하는 경제이론 가운데 ''조정실패(coordination failure)'' 모형이 있다.이 모형에서 신케인스주의자들은 경제주체들간에 상대에 대한 정보가 불충분해 효율적 조정이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경기후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명한 ''신발공장의 예''를 들어보자.

신발과 셔츠를 생산하는 공장들로 구성된 경제가 있다고 하자.경기후퇴 초기에 신발공장에서는 특정연도 생산계획을 세우면서 셔츠공장이 생산과 고용을 줄일 것으로 예상, 그 여파로 신발에 대한 수요도 줄어들 것으로 판단해 신발 생산계획량을 줄인다.

셔츠공장에서도 신발공장이 생산과 고용을 축소시킬 것으로 판단하고,이는 결국 셔츠에 대한 수요 위축으로 연결될 것으로 예측해 셔츠 생산을 줄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필요 이상으로 생산이 줄어 경기후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이는 두 공장이 일종의 게임 상황에 직면해 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만일 두 공장이 각각 생산을 축소 조정하지만 않는다면 경기후퇴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조정의 대상이 되는 경제주체의 수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이같은 조정이 쉽지 않다.

말하자면 구태여 비관적 전망을 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상대에 대한 비관적 기대를 하기 때문에 실제로 경기가 나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97년에 시작된 아시아 경제위기도 이같은 모형으로 위기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예를 들어 각 국가에 다수의 외국 투자가들이 상호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처음에 어느 한 국가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이 나라에 투자하고 있는 투자가들은 다른 투자가들이 모두 투자를 보류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자신도 손을 빼게 된다.

모든 투자가들이 이렇게 판단하면 모든 나라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게 되고 위기의 상황은 다른 나라로 빠르게 ''전염''된다.물론 모든 투자가들이 조정을 통해 처음 문제가 발생한 나라에 자금을 지원해 주었다면 총체적 위기를 막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를 담당할 뚜렷한 주체가 없었기 때문에 조정실패에 따른 위기가 초래됐다는 것이다.

한국외대 경제학과 교수 tsroh@maincc.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