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규제 완화와 경기 부양..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 교수>

재계와 정계가 힘을 합해도 구조개혁과 경기부양이 성공할까 말까 하는 상황인데 재계의 규제개혁에 대한 요구와 정부 정책노선 간에 마찰음이 들린다.

서구사회가 왜 동양보다 빨리 성장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중 하나가 바로 효율적인 ''제도''다.주지하다시피 서양 산업발전의 토대인 르네상스의 3대 발견(화약 나침반 종이)을 먼저 하고도 동양이 서구에 뒤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경제가 성장하기에 유리한 ''제도''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의 한 연구는 후진국이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제도적 요인이 가장 크다고 분석했다.

자본 노동력 기술만 있으면 후진국도 선진국 ''따라잡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옛날 얘기다.지금 한국은 과거의 기업관행 금융관행 정부관행을 모두 경제성장에 유리한 구조로 바꾸는 ''제도 개혁''중이다.

이는 결국 전체적인 틀을 시장경제원리와 한국경제 성장에 맞게 정비하기 위한 작업이다.

이중 비교적 구조조정이 많이 진행된 곳이 바로 대기업의 기업관행 금융관행이다.이 두 분야의 구조조정이 가장 두드러진 이유는 분명하다.

세계화 추세속에 투명성이야말로 기업의 생존 필수조건이 되어가고 있고,금융시스템의 안정 회복이 구조조정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재계도 이런 대세를 거슬러서는 범세계화 경쟁구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하지만 이제 외국인들도 가치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다 사갔는지,요즘은 우리가 팔려고 해도 쉽게 사가려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3년 동안의 기업 및 금융 정리과정에서 투입된 공적자금이 1백50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서구경제의 사례 분석에서도 구조조정으로 반드시 경기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그 성공여부는 역시 산업 및 시장의 여건,즉 경기 상황에 달려있다.

따라서 지금은 시장경제원리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경기부양을 위한 제도적 보완 및 경제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 및 금융정책에는 대체로 재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별다른 정부재원이 필요 없어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규제완화다.

이미 경제교과서에서도 규제완화는 경제성장의 한 원천임을 가르치고 있다.

재계가 7개 분야 33개 항의 정책과제를 정부에 건의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중 제도개선 요망 사항이 23개로 압도적이다.

재계 건의사항은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규제완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를테면 지난해 4월 시행되어 내년 3월말까지 2년만에 출자총액을 25%까지로 축소하라는 규제는 출자총액한도 해소기간을 2003년으로 연장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사실 기업구조조정이나 금융구조조정은 단기 목표가 될 수 없다.

중장기적으로 이 두가지 목표달성에 장애 요인이 되지 않는다면,재계가 건의한 규제완화는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은행의 새로운 대출관행,증권시장이 이미 기업의 과도한 출자나 대출,현금흐름,미래 성장 가능성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부와 재계가 간담회를 통해 규제완화 협의기구를 설치해 이달말까지 개선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 세부적 결론이 어떻게 나건,최소한 다음 두가지 사항이 고려되었으면 한다.

첫째,이제 재벌 타도냐 옹호냐의 이분법적 편가르기는 그만 두자.

기업은 규제완화를 받더라도 외환위기의 원인중 하나가 과도한 차입 등 자신들의 그릇된 기업관행이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하고,경제의 활력을 창출하는 기업가 정신의 발로가 곧 기업이라는 새롭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나가야 한다.

둘째,시장원리가 더 효과적으로 작용하도록 해준다는 대전제 아래 규제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 내용은 기업이 범세계화 시장에서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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