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시대 열린다] (1) '한국증시 달라져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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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구조가 정착돼 있는 미국에서는 주식투자가 가장 유력한 자산운용수단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 90년 이전까지 전체자산에 대한 주식의 비중은 11~12%에 그쳤다.
그러나 91년 장기채권 금리가 떨어지면서 주식투자 비중이 크게 늘어 작년 3월말에는 두배인 23%선으로 증가했다.
간접 주식투자인 뮤추얼펀드까지 합치면 그 비중은 32%대나 된다.
반면 예금비중은 20%를 웃돌았던 것이 같은 기간 12%대로 급감했다.
채권도 8~9%였던 것이 5%대로 줄었다.
저금리로 예금이나 채권의 투자메리트가 줄어든 것이 주력 투자대상을 완전히 바꿔 놓은 것이다.
금을 비롯한 실물자산도 가격이 하락추세를 보여 장기적으로 금융자산에 비해 투자매력이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미국에서 확인되는 이같은 자산운영구조의 변화는 우리에게도 자산관리의 패러다임을 바꿔야할 때가 왔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저금리시대에서는 주식투자에 대한 기존의 인식틀을 확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당장 주가수준을 봐도 한국은 세계적으로 저평가돼 있는 상태다.
PER(주가수익비율)의 경우 한국은 작년말 현재 15.4배에 그쳐 미국 나스닥시장의 1백26.9배에 비해 12%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일본(85.5배)과 비교해서도 18%밖에 안된다.
이 때문에 거래소 상장업체 7백2개사의 시가총액은 1천4백83억달러로 미국 나스닥시장의 4.1%, 일본증시의 4.6%에 불과하다.
상장업체수가 비슷한 홍콩(7백90개사)에 비해서도 23.8%밖에 안된다.
그렇지만 기업의 내재가치는 IMF 관리체제 이후의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내실경영으로 크게 높아진 상태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IMF가 가져다준 유일한 선물'이라고 평가한다.
혹독한 환란으로 고통도 있었지만 그 고통이 안으로는 속살을 찌게 했다는 것이다.
국내 대표기업들의 주가와 해외 경쟁업체들의 주가를 비교해봐도 이같은 평가가 분명해진다.
삼성전자의 PER는 5월말 종가를 기준으로 할 때 10배로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 55.2배의 18%밖에 안된다.
현대중공업은 6.5배로 일본 미쓰비시(53배)의 12.2%에 불과하다.
외국인이 이머징마켓 가운데서도 한국을 1순위 투자대상국으로 꼽고 있는 것은 이같은 측면을 반영한 것이다.
이남우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인 가운데 앞으로 수년간 한국기업의 PER가 10배 이상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들이 소액주주들을 위해 고배당을 예고하는 것과 함께 공시 강화, 적극적인 IR 활동 등에 나서고 있는 점도 장기 주식투자 활성화에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최근 태평양의 주가가 사상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실적이 우량한 이른바 '태평양칩'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이러한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고배당은 한국증시에서 단순 시세차익을 넘는 높은 배당수익률을 실현시킴으로써 주식투자의 호흡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내재가치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돼 있는 우량기업들이 제대로 평가받도록 하는 '주가 제자리 찾아주기'는 해당기업만이 아니라 한국경제 전체의 선순환과 활력회복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우량기업으로서 높은 배당과 적극적인 IR 활동으로 주주를 중시하는 기업을 발굴하는 일은 이래서 시급하다.
문희수 기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