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상의 '골프 비사'] 故 이병철 삼성회장 <8> '1천원 내기'즐겨

고 이병철 회장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수요회''일 것이다.

이 회장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주일에 세번 안양골프장을 찾았다.수·금·일요일로 이틀에 한번꼴로 라운드를 했다.

이 회장의 티오프 시각은 고정돼 있었다.

수요일과 금요일엔 낮 12시30분,일요일엔 오전 10시에 정확히 티오프했다.수요회란 수요일에 모여 라운드를 하는 모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회원은 20명 안팎이었다.

이 회장을 포함 신현확 국무총리,민복기 대법원장,유창순 국무총리,안희경 변호사,김진만 국회부의장,신용호 교보 회장,권철현 연합철강 회장,박태원 경기도지사 등 당시 내로라 하는 인사들로 구성됐다.이 회장은 김진만 부의장,신현확 총리,권철현 회장,박태원 지사와 같은 조로 플레이하곤 했다.

그런데 이 회장은 플레이할 때 반드시 내기를 즐겼다.

그것도 타당 1천원짜리 내기였다.액수는 적으나마 내기골프를 즐긴 것은 ''골프를 적당히 하는 것을 배제하고 플레이의 묘미를 돋우기 위해서''였다.

이 회장의 이런 성격을 잘 아는지라 직원들은 미리 3만∼5만원을 천원짜리로 바꿔서 플레이 시작 전 드리곤 했다.

물론 수요회 멤버들은 라운드 후 스코어카드를 보고 정산을 했다.

이 회장은 비록 천원짜리 내기였지만 동반자들보다 잘 쳐 ''따는 날''은 좋아하고 기뻐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대한민국 제일가는 갑부였지만 내기에서 단 돈 몇푼을 땄다고 하여 기뻐하는 모습을 보곤 ''사람의 심정은 갑부나 범부나 똑같구나''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이 회장과 같은 조로 플레이한 모기업 회장이 스코어가 좋지 않아 1만∼2만원을 잃은 듯했다.

라운드 후 이 회장이 "돈을 잃게 될 것 같은데 마음이 상합니까?"라고 묻자 그 회장은 대뜸 "돈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회장이 다시 "재산이 몇백억이라는데 뭘 그럽니까"라고 말하니 그 회장 왈 "아닙니다.몇백억이 아니라 1백80억원 있습니다"라고 말해 좌중이 폭소를 터뜨렸다.

여하튼 이 회장과 수요회 멤버들은 작은 내기를 통해 모임의 끈을 단단히 조였던 듯하다.

이 회장 골프의 특징은 무리를 하지 않는 것이다.

홀을 공략할 때 과욕을 부리는 일이 없었다.

또 골프규칙을 철저히 준수했는데 그것은 이 회장이 예약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것과 더불어 이 회장의 ''완벽주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회장은 수요회외에는 여타 골프모임에 관여하지 않았다.

아무리 높은 데서 부킹청탁이 들어와도 "내 소관이 아니다.담당자에게 말해보라"며 거절했다.

그러니 골프장 직원들은 감히 부킹청탁을 받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헤드프로인 나도 마찬가지였다.다른 골프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리=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