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팔공산'] 검푸른 능선마다 '千年 전설' 꿈틀

"퉁 퉁 퉁..." 느닷없는 소리에 흠칫 놀란다. 사방을 둘러봐도 소리의 진원을 찾을수 없다. 강렬한 초여름 햇살에 비껴 누운 그림자마저 괴이스럽다. 되레 놀란 듯 푸드덕 대는 날갯짓에 새라는 것을 안다. 키 큰 나무줄기를 통통 튀어 올라 머리를 까닥대며 부리로 찧는 모습이 영락없는 딱따구리의 일종이다. 그제서야 들리지 않았던 더 많은 소리들이 함성처럼 들고 일어선다. 사방에서 부산스러운 이름 모를 새들과 곤충들로 산길이 외롭지 않다. 경북 영천쪽 팔공산(1,193m) 자락 대가람인 은해사의 부속암자 중암암을 찾는 길. 유난히도 새가 많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푸른 잔디 위로 죽죽 뻗은 소나무숲이 울창하다. 3백년이 넘은 소나무숲이라고 한다. 통나무집이 어울리는 자연휴양림을 보는 것 같다. 가족나들이가 즐거운 듯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싱그럽다. 여기서부터 은해사 종각 보화루까지의 흙길이 산책하기 좋다. 왼쪽으로 천년 바위절벽이 이어지고 그 아래 도랑을 흐르는 물소리가 상쾌하다. 보화루 앞 다리를 건너기 전의 대소인하마비. 아주 오래된 듯한 이 표지석은 이젠 자리를 잘못 정한 것 같다. 찻길은 건너편에 둘러 있고 이쪽은 걷는 사람들만을 위한 길이니까 말이다. 거대한 향나무가 경내를 지키는 은해사는 불자들의 발걸음이 많은 것치고 아주 단정하다. 9세기초 조카 애장왕을 폐위시키고 즉위한 신라 41대 헌덕왕이 참회와 나라의 안녕을 위해 지은 해안사에서 시작된 고찰. 조선때는 인종의 태실을 지키는 사찰이었다. 뒤편 산봉우리의 이름도 태실봉이다. 신라시대의 원효와 의상대사, 고려시대의 지눌 일연스님, 조선시대의 영파성규스님을 비롯 최근까지 향곡 운봉 성철스님 등 많은 선지식들을 배출했다고 한다. 추사와의 인연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웅전과 보화루, 그리고 불광각(확인하지 못했다) 현판이 추사의 친필이라고 전한다. 괘불(보물 1270호) 등의 성보문화재가 많이 있다. 은해사를 지나 곧바로 가면 백흥암을 만난다. 극락전(보물 790호) 수미단(보물 486호)을 비롯 추사의 현판과 주련 등이 있다. 비구니스님의 수행도량으로 평상시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중암암까지는 힘을 들여 올라야 한다. 길은 차가 다닐수 있게끔 시멘트포장이 되어 있지만 돌고돌아 오르는 길이어서 만만치 않다. 은해사에서부터 10리 걸음 끝의 마지막 2백m는 돌계단길이다. 그 끝에 서있는 소운당 옆이 중암암, 일명 돌구멍절이다. 아주 큰 바위틈을 머리를 낮추고 들어가면 서로 껴안은 듯한 모습의 법당과 요사채가 있다. 신라 김유신이 17세 화랑시절 수련했다는 곳이다. 국내에서 가장 깊다는 해우소가 있다. 암자 위 수수한 무명석탑을 지나 오르면 만년송이 서 있다. 암자를 덮칠 태세였는데 스님의 기도로 자리를 옮겼다는 건들바위 옆 좁은 바위틈 뒤로 있다. 뚱뚱한 사람은 포기해야 할 만큼 바위틈이 좁다. 월출산 구정봉 밑의 바위틈과 비슷하다. 만년송은 그 크기가 기대에 못미치지만 뿌리내린 모습이 신비롭다. 바위속을 뚫고 뿌리를 뻗은 모습이다. 그 뿌리도 줄기를 보는 것 같다.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인지, 순응하는 것인지 분간이 안된다. 돌아나와 삼인암이라 각인된 큰 바위에 서 볼 일이다. 아래로 펼쳐진 짙푸른 녹음의 바다가 머릿속을 한없이 맑게 해준다. 영천=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