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장비업계 '빅딜' 딜레마

'노텔쇼크'가 통신장비 업계의 재편을 촉발할까. 세계 통신장비 업계가 재편 가능성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노텔의 대형 적자기록을 계기로 통신업계의 불황이 예상보다 장기화되리란 비관이 확산되면서 업계 재편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일 "통신장비 업계는 불모지대로 들어섰다"며"인수·합병(M&A) 압력이 고조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이날 "미국 통신관련 업계의 부채가 무려 6천5백억달러에 달한다"고 우려했다. 특히 통신장비업계의 최대 고객인 통신서비스 업체들이 앞으로 2년여동안 설비투자 등 자본지출을 줄일 것으로 보여 회복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길어지는 어둠의 그림자=지금까지 통신장비 업계는 경기 한파가 내년초께 끝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노텔의 존 로스 회장은 지난 16일 "내년 하반기에도 통신 업계의 회복은 힘들 것"이란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특히 "지난분기 인터넷 접속량이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경고,15% 성장을 예상했던 업계 전문가들을 무색케 했다. ◇높아지는 업계재편 압력=노텔쇼크 이전에도 통신장비 업계에서는 M&A 필요성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달 실패한 미국 루슨트테크놀러지스와 프랑스 알카텔간 합병 시도 이후 중소업체들의 M&A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미국 중소 통신장비 업체인 탤렙의 딕 노테바어트 사장은 최근 "5∼6개 업체면 충분한 시장에서 40개 회사가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대형 통신장비 업체간 합병은 단기간내 성사되기 힘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점치고 있다. 루슨트와 알카텔의 합병 실패에서 보듯 '대등합병'은 성공률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불황에 빠진 통신업체를 웃돈까지 줘가면서 인수할 통 큰 기업이 나타날 공산도 희박하다. 따라서 당분간은 중소 통신장비업계의 '스몰딜'이 주를 이룰 전망이다. 특히 사업영역이 좁고 고객수가 적은 통신장비 업체들은 독자생존이 어려울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미국의 ONI시스템 코비스 시카모네트웍스 등이 대표적인 예다. ◇과감한 부실사업 철수=대형 통신 장비업체들은 M&A 여건이 조성될 때까지 당분간은 수익성 없는 사업에서 철수하는 사업구조조정에 급피치를 올릴 것(드레스드너 클라인워트의 통신장비 애널리스트인 아리안 말러)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최근 이런 조짐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16일 노텔은 디지털가입자망(DSL) 사업에서 손을 뗀다고 발표했다. 이번 사업철수로 노텔이 떠안게 될 손실은 무려 26억달러.그러나 이 정도 손실로 끝내는 편이 현명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올초에는 시스코시스템스가 광통신 스위치 사업에서 철수했다. 시스코 역시 그동안 이 사업 분야에 투입했던 5억달러의 투자를 고스란히 날리는 손실을 감수했다. 노혜령 기자 h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