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이젠 변해야 한다] (5) '외국에선 어떻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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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노동자'들은 주말에 골프장을 찾곤 한다.
일반인은 가격이 비싸 엄두도 못내지만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들이라면 가능하다.
노조가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부지에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어 조합원이면 누구나 일반 골프장보다 훨씬 싼 가격에 골프를 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는 임금인상을 둘러싼 노사갈등도 존재하지 않는다.
노.사.정 공동으로 매년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정하면 개별기업노조는 반드시 이를 준수한다.
전문가들이 세계에서 노사관계가 가장 안정적인 나라로 꼽는 싱가포르의 모습이다.
노동 선진국에서도 파업은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대립과 폭력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노동운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싱가포르는 물론이거니와 영국도 마찬가지다.
한때 과격한 노동쟁의로 몸살을 앓았던 나라들이지만 현재는 대화와 타협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전문가들은 정부의 강력한 노동정책 과격한 노동쟁의에 대한 반대여론 노사간 협력적 관계 구축 등이 안정된 노사관계의 원동력이라고 지적한다.
◇정부의 노력=60년대만 해도 싱가포르의 미래는 암울했다.
실업률이 40%를 오르내릴 정도로 경제상황은 악화되고 있었건만 노동쟁의는 투쟁 일변도였다.
제조업의 80% 가량을 해외자본에 의존해야 했던 싱가포르로서는 치명적이었다.
이에 싱가포르 정부는 안정된 노사관계를 위해 단체교섭을 금지하는 등 노조의 과격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노동관계법을 제정했다.
이후 싱가포르는 변하기 시작했다.
노동시장은 완전고용 수준에 이르렀으며 외국자본의 유입이 활발해졌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 정부는 70년대 중반부터 노조의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당근정책도 병행했다.
노조가 직접 택시회사 보험회사 슈퍼마켓 체인점 등을 운영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 준 것이다.
장영철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노조에 대한 정부의 강온양면책이 경제발전의 시발점이 됐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 정서 제대로 읽었다=영국도 70년대부터 80년대초까지 임금인상을 명분으로 한 노동쟁의로 큰 혼란을 겪었다.
파업에 돌입할 경우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하는 체신노조 항만노조 등이 주도세력이었다.
당시는 전체 국민의 72%가 '보다 강력한 노동관계법안'마련에 찬성할 정도로 과격한 노동운동에 대한 반국민정서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때였다(83년 여론조사).
대처 수상은 이같은 민심을 정확히 파악했다.
연대파업을 금지시키는 것은 물론 노조가 파업찬반투표를 할 때도 우편투표만 허용했다.
한국노동교육원 허찬영 박사는 "영국의 노동정책이 노조 활동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한때 국민정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세력을 잃은 노조는 이러한 정부방침에 대항할 힘을 상실했다"고 밝혔다.
◇노사간 협력=회사의 경영위기를 노사간 협력관계 구축으로 극복해 나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미국의 AT&T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지난 84년 연방정부의 기업분할 명령으로 대규모 인원감축이 불가피했다.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근로자들과 충돌,노사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기업 이미지 손상으로 매출하락도 경험해야 했다.
이에 노사는 '미래의 작업장'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사측은 우선 근로자의 경영참여를 허용하는 한편 인력감축으로 인한 근로자 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직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한 예로 회사가 정보기술서비스사업부의 데이터센터를 폐쇄키로 결정함에 따라 이곳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은 퇴출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사측은 80시간의 유급훈련과 직업박람회 개최 등을 통해 2백50명 전원을 다른 회사로 이직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밖에 제록스 다임러크라이슬러 등도 노사간 파트너십 구축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간 모범 기업으로 꼽힌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우선 회사가 잘돼야 노동자도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홍성원 기자 anim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