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금당계곡'] 내 고향 여름속으로 .. 계곡 곳곳 야영지

비가 내린다. 단비가 쏟아진다. 어둠터널 끝 밝은 햇살처럼 그렇게 반가운 빗줄기가 뿌린다. 바싹 마른 밭이랑이며 논바닥의 갈라진 틈 사이로 "희망"이 흠뻑 스며든다. 주름진 농부들의 검게 탄 얼굴에 하얀 미소가 번진다. 눈가엔 남모를 물기가 비친다. 풀죽은 잎새들이 일제히 일어서 환호한다. 빗방울 향해, 먹구름 보며 오랜만에 물기를 만끽한다. 계곡에도 생기가 돈다. 한데 모여 콸콸대며 쏟아져 내리는 빗물이 반가운 듯 순순히 길을 터준다. 물속 생명붙이들도 제세상 만난 듯 활개를 친다. 계곡으로 향한다. 사람살기 제일 좋다는 "해피 700" 고지의 도시 평창, 그중에서도 금당계곡이다. 금당계곡은 금당산(1천1백73m), 거문산(1천1백45m)을 끼고 도는 길고도 넓은 계곡. 흥정산과 태기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용평면 장평리에서 합쳐져 유포리~개수리~하안미리에 이르는 20여km 구간을 말한다. 물은 다시 대화천과 합류, 서강~동강~남한강 물줄기에 힘을 보탠다. 수줍은 철쭉의 봄, 흐드러진 단풍의 가을풍광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물소리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시원하다는 12개수(계곡물이 12마을을 돌아 흐른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금당계곡의 여름을 치켜세우지 않을수 없다. 차를 가져 왔다면 차를 버리고 걸어야 할 일이다. 특히 비포장도로(424번 지방도) 구간에서는 누구나 한번쯤 머릿속에 그려봤을 그런 시골과 계곡의 비경을 만날수 있다. 백옥포교 건너 왼쪽으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트레킹 코스. 계곡길 가 너른 밭엔 감자꽃이 수줍게 피어 있다. 별모양의 하얀 꽃잎은 가장자리가 연보라색으로 물들어 있다. 중앙의 노랑수술과 어울려 묘한 색감을 낸다. 씨뿌리고 40일 지난 하지에 수확해 "40일감자" 또는 "하지감자"라고 부르는 감자종류. 하지만 이곳은 고지대라서 8월에나 감자를 캔다. 알이 꽉차 어디에 내놓아도 알아주는 평창의 특산물이다. 평창지역에는 이같은 감자밭이 2천ha나 된다. 여기저기 당귀, 황기도 크고 있다. 이 역시 질이 좋아 서울의 어느 한의대학병원에서 밭떼기로 사간다고 자랑이다. 좀더 걷자. 오른쪽으로 휜 오름길을 지나 조금 내려가면 입이 딱 벌어진다. 까마득한 아래쪽의 휘어진 물길, 그 너머 녹음속에 파묻힌 산마을 정경. 아직 물이 많지 않아 아쉽지만 어느 비결서의 10승지를 다시 꼽으라면 이곳이 들지 않을까. 농사일을 나올때 산막으로 쓰는 것 같은 쓰러질듯 허름한 집이 잘 어울린다. 한참 가다 만나는 치마바위는 웅장하다. 이름대로 수놓은 치맛자락을 펼쳐 놓을 듯 검붉은 바윗덩어리가 벼랑을 이루고 있다. 계곡은 곳곳에 야영할수 있는 곳을 남겨 두는 아량을 베푼다. 벌써 텐트를 치고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물이 준 때문인지 물반 고기반의 포인트가 많다는게 낚시꾼들의 귀띔. 씨알 굵은 모래무지며 갈겨니 등이 살림망에 가득하다. 평창=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