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택선의 '경제 다이제스트'] '교역조건 나빠지면 실질소득 줄어'

외환위기가 시작된 이후 환율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교역조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상품의 물가지수에 대해 상대적으로 수출하는 상품의 물가지수가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교역조건은 우리가 대외 무역을 통해서 얼마나 실질 국민총소득을 증대시켰는지를 알게 해주는 중요한 지표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가 수출하는 물건의 가격이 더 높아져서 교역조건이 개선되면 같은 양의 물건을 만들고도 소득이 증가하며, 반대로 교역조건이 악화되면 같은 양의 물건을 생산하고도 실질소득이 감소할 수 있다. 그런데 교역조건의 악화가 아주 심해지면 더 많은 물건을 생산하고도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이를 "궁핍화 성장"(immiserizing growth)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해 성장은 됐지만 국민총소득(GNI)이 감소해 궁핍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국제무역에서 어떤 나라가 생산의 증대, 즉 경제성장을 통해 수출하는 물건을 더 많이 생산하고 수출을 늘리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여기서 이 나라의 경제규모가 크거나 해당 상품의 국제시장 점유율이 높아 이 물건의 국제시장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생산을 늘릴수록 국제시장 가격은 하락하고, 오히려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 줄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수출하는 물건의 값은 싸지고 수입하는 물건의 값은 상대적으로 비싸게 될 수 있다. 이를 가리켜 교역조건이 악화됐다고 한다. 교역조건이 심하게 악화되면 우리가 외국을 상대로 순수하게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 줄어들게 된다. 이처럼 궁핍화 성장이란 수출재에 치우쳐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는 경우 교역조건의 악화로 인한 부정적 효과가 성장에 따른 긍정적 효과를 압도, 성장에도 불구하고 실질소득이 감소하는 것을 말한다. 궁핍화 성장을 일으키는 한가지 조건은 그 나라가 수출하는 재화가 국제시장에서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낮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가격이 큰 폭으로 변해도 수요량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공급이 늘어날 경우 이를 소화하기 위해 큰폭의 가격 하락이 요구되고 따라서 교역조건이 심하게 악화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지난해에 이어 금년 들어서도 우리나라의 교역조건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유가 상승 등 수입물가의 오름세에도 그 원인이 있지만 반도체나 통신장비 등 우리의 주력 수출품목이 국제시장에서의 경쟁 격화와 공급과잉 등으로 큰 폭의 가격하락을 보임으로써 교역조건의 악화가 지속됐다고 한다. 이로 인해 실질GNI 증가율이 실질 GDP 증가율에 훨씬 못미쳤다는 발표를 보면 궁핍화 성장이 먼나라 이야기만은 아닐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