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방카슈랑스, 또 하나의 재앙?..김정동 <연세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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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금융계에는 '방카슈랑스'라는 단어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방카슈랑스란 은행과 보험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금융기관으로서 1980년대 후반부터 유럽과 호주에서 본격 시행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오랜 갈등 끝에 최근에 제한적으로 허용키로 했다.
우리나라는 IMF체제 이후 금융 구조조정 및 규제완화 방안의 일환으로 방카슈랑스가 논의되었고,2000년 1월부터 보험사가 은행 창구에 설계사를 파견하는 형식의 초보적 수준의 방카슈랑스가 도입되었으나 그 성과가 아직은 미미하다.
정부는 은행이 보험자회사를 설립하여 보험의 모든 업무영역에 진출토록 하는 본격적인 방카슈랑스를 도입(2002년?)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은행권은 이 계획을 적극 환영하고 있고,보험권은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은행 증권 보험 등의 금융산업엔 분리론과 통합론이 있어 왔는데,1980년대 후반부터 통합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유럽 제국은 이전부터 금융 겸업을 실시해 왔고,미국도 99년 11월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을 시행하는 등 금융업종간 교류 내지 통합을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대공황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금융 통합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금융감독업무의 광범위한 전산화가 자리를 잡은 덕분에 금융감독 시스템이 정교해져서 전면적인 금융부실을 사전에 감지하여 대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또 정치 경제 및 사회 시스템에 견제와 균형이 적절히 이루어지고 사회전반적인 투명성이 높은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금융통합의 역기능이 최소화되고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금융감독 시스템이 미국처럼 정교하지도 못하고,오랜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에 본격적인 방카슈랑스를 도입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는 큰 의문이다.
방카슈랑스는 사회적 여건이 갖추어지면 대단히 효율적인 제도임에는 분명하다.
보험사가 판매조직을 운영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드는 것에 비하여 은행은 저렴한 비용으로 보험을 판매할 수 있다.
가격 우위를 앞세운 은행권이 보험상품을 판매하면 보험권의 상품을 단시일 내에 압도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프랑스의 은행계 생명보험사인 프레디카(Predica)는 창업 1년 반만에 업계 2위 자리를 차지했고,은행의 보험판매 시장 점유율이 80년의 17%에서 96년에는 59%로 급증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당연한 결과로서 보험브로커,대리점 및 설계사들은 대량 폐업과 실직의 운명을 맞이했다.
우리나라에 현 시점에서 본격적인 방카슈랑스 제도가 도입되면 우선 약 30만의 보험모집인과 6만의 보험사 임직원이 실직의 위협을 받게 된다.
또 중하위권의 생명보험사들은 퇴출이 불가피해질 것이고,그 뒤처리를 위해 최소한 10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태는 분명 '경제적 재앙'이다.
따라서 방카슈랑스의 도입 시기는 이러한 부작용이 최소화되는 시점으로 미뤄져야 한다.
현재 보험업에 브로커제도가 도입됐고 인터넷을 통한 보험모집이 확산되고 있으므로 멀지 않은 장래에 모집인 조직의 축소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 때에 방카슈랑스가 도입되면 적어도 대량실업은 발생되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방카슈랑스 제도의 또 하나 문제점은 은행은 보험업을 겸업할 수 있으나 보험사는 은행업에 진출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형평성 위배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정책이다.
이렇게 무리한 제도를 시행한다면 보험업계는 당연히 필사적인 저항을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에 방카슈랑스 제도가 도입되는 것이 바람직하나,충분한 사전 준비와 여건의 성숙 없이 도입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최근의 의약분업 등 그 취지는 좋으나 졸속 도입과 시행으로 경제를 어렵게 한 정책의 예는 허다하다.
방카슈랑스도 무리하게 추진하면 똑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다.
jdkim@bas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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