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섬업계 구조조정 딜레마] (上) 되는게 없다

화학섬유 업종이 심각한 구조조정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세계적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하락을 이겨내기위해 화섬업계는 노후설비교체,공장통폐합,설비해외이전 등으로 구조조정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하지만 노조의 반발 채권단의 도덕적 해이 실패 기업주의 수렴청정 등으로 인해 구조조정의 난관에 부닥쳐 있다. 폴리에스터 생산량으로는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수익성 악화,후발국의 도전,통상마찰 등으로 내우외환에 놓인 화섬업계의 구조조정 방향에 대해 시리즈로 짚어본다. "낡은 나일론 생산설비를 새 설비로 바꾸면서 남는 인력을 어쩔 수 없이 다른 작업장으로 돌렸는데 노조가 이에 대해 반대하고 있습니다.사정이 이런데 어떻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겠습니까" 효성 울산공장 파업현장을 목도했던 이 회사의 조정래 섬유2PG 사장은 27일 기자간담회에서 노조의 설비교체 반대운동을 19세기 산업혁명 직후 러다이트(기계파괴)운동에 비유하며 구조조정의 어려움을 하소연했다. 효성은 외환위기 이후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핵심부문인 스펀덱스에서 현재 세계 2위(1위는 듀폰)와 타이어코드에서 세계 1위에 올라선,소위 잘 나가는 기업이다. 나머지 나일론 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설비부문의 구조조정에 나섰다 노조의 반발에 부딪힌 것. 동종업체인 고합 태광산업(대한화섬 포함)은 효성에 비해 사정이 더 어렵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1호 기업인 고합의 경우 경쟁력이 없는 의왕과 울산공장의 화섬설비를 중국 칭다오(靑島)법인으로 옮기는 크로스 보더(Cross-Border)형 구조조정을 추진했으나 노조의 반발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한국에 있는 노조 간부들에게 중국 현지공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도 원가경쟁력이 있는 중국으로의 설비이전에 수긍을 하더군요. 하지만 '우리는 뭘 먹고 사느냐'며 먼저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 노조간부들을 초청했던 고합칭다오법인의 한 임원은 "뾰족한 대책이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태광산업은 폴리에스터 노후설비를 교체하기 위해 관련 직원 2백여명에게 휴직명령을 내릴 계획이었으나 노조가 바로 직전 파업에 돌입하는 바람에 울산 공장엔 열흘 이상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코오롱 구미공장에선 지난해 설비교체를 반대하는 노조의 장기 파업을 겪은 데다 올들어 화재까지 일어나 주가가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안에서 노조에 덜미가 잡혀 구조조정을 못하고 있는 사이 한국 화섬산업은 밖에서 후발경쟁국인 중국 인도네시아의 강력한 도전으로 위협받고 있다. 중국 화섬업계의 인건비는 불과 한국의 10분의 1 수준이어서 중국제품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급증하는 반면 한국산 점유율은 작년부터 하락추세로 돌아섰다. 현대증권 임정훈 애널리스트는 "노조의 반발로 화섬업체가 구조조정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할 경우 원화값이 올라가면 채산성 악화로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