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전문기자의 '세계경제 리뷰'] 월가 '희생양 사냥' 한창

월가에서 희생양(scapegoat) 사냥이 한창이다. 투자자들은 주가 폭락의 원인 제공자를 색출,분노와 비탄의 그물 속에 가둬놓고 있다. 그럴만도 하다. 뉴욕증시의 폭락장세가 1년이상 지속되고 있으니. 첨단 기술주의 나스닥시장은 지금 시퍼렇게 멍들어 있다. 지난 1년여사이에 나스닥지수는 반도 안되게 쪼그라들었다. 아무리 투자의 최종책임이 투자자 자신들에게 있다고는 해도 주가 폭락 손실을 말 없이 감내하기는 억울하다. 월가가 맨먼저 잡은 희생양은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었다. 5,000선을 치고 올라가던 나스닥지수가 2,000 아래로 함몰되고, 12,000선을 넘보던 다우지수는 9,000선으로 무너졌던 지난 3월 그린스펀 의장은 첫 희생양이 됐다. 투자자들은 10년 장기호황의 피로감이 경제에 감돌기 시작한 지난 1999~2000년에 그린스펀이 금리를 막무가내로 올려 증시의 판을 깼다며 그를 도마위에 올렸다. 그린스펀은 99년6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금리를 6차례에 걸쳐 2%포인트 올렸다. 이 금리 인상의 파편을 맞은 주식들은 아직 신음중이다. 경기가 하강하기 시작했는데도 과열된 경기를 식힌다며 금리를 인상,주가 폭락을 초래하고 결국 경제도 죽였다는 비난 속에 그린스펀은 할 말을 잃었다. 그린스펀은 지난 4월의 기습적인 금리 인하(올들어 4번째 인하)로 증시가 꿈틀대자 일단 비난의 표적에서 벗어났다. 주가가 5월에 다시 빠지자 투자자들은 새로운 희생양 사냥에 나섰다. 사냥 그물에 걸린 두번째 희생양은 언론. 신문과 방송이 증시 상태를 실제보다 과장되게 보도,상황을 왜곡시켰다는 투자자들의 원성에 언론은 몸둘 바를 몰랐다. 이어 6월에는 증시 애널리스트들이 3번째 희생양으로 걸려들었다. 애널리스트들은 엉터리 분석으로 자신과 증권회사들만 배를 불렸다는 비난에 자정(自淨) 결의를 하고 윤리강령이라는 반성문을 써야 했다. 심지어 의회 청문회에 불려나가 증시 침체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하기까지 했다. 그린스펀-언론-애널리스트로 이어진 월가의 희생양 시리즈는 언제 끝날까. 시리즈가 완결되는 날 세계 증시는 펄펄 날고 있을 것이다. lee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