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ization Impact! 외국자본] (5) 토종협력업체

[ 기로에 선 토종협력업체 ] 경남 김해에서 엘리베이터용 부품인 층수표시장치 등을 생산하는 신성사의 박문주 사장. 30년 넘게 이 분야에서 일해온 그는 요즘 창업(1979년) 이후 가장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신성사는 최근 LG오티스가 협력업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격 심사인 "Q레벨"을 치렀다. 1~4등급으로 나뉜 Q레벨에서 3등급을 받으면 미국 오티스 본사에도 직접 부품을 공급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또 최소한 2등급에는 합격해야 LG오티스에 납품할 수 있다. 전세계 수많은 오티스 협력업체 가운데 최고 등급인 4등급을 받은 업체가 거의 없을 정도로 Q레벨은 까다롭다. 박 사장은 "세계 최대 엘리베이터 업체로부터 실력을 인정받는 심사인 만큼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며 "3등급 이상의 성적을 거둬 오티스의 전세계 공장에 부품을 댈 수 있는 기회를 반드시 잡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98년 삼성중공업의 굴착기 부문을 인수한 볼보건설기계코리아의 협력업체인 신일정밀. 굴착기의 상체와 하체를 연결하는데 들어가는 대형 베어링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볼보 프랑스와 독일 공장에도 부품을 수출하고 있다. 볼보의 협력업체 평가기준인 'SEM'을 통과한 덕분에 글로벌소싱업체로 발돋움한 것이다. 자동차 굴착기 엘리베이터같은 제조업의 경우 완성품업체가 외자계로 넘어갈 경우 협력중소업체는 대개 1~2년안에 장래가 결판난다. 신일정밀처럼 다국적기업의 글로벌생산네트워크에 편입되는 행운을 누리는 업체는 토종업체들의 경쟁력 수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실로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드물다. 신일정밀 김종하 부사장은 "볼보는 '최고 품질의 제품만을 만든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협력업체들에도 최고 품질의 부품을 요구한다"며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협력업체들은 이같은 요구에 적응하지 못해 도산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 협력업체에 밀어닥친 '외국자본 충격' =국내 제조업에서 외자계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 9백여개중 매출 규모가 큰 2백여개 업체에 외국인 지분이 들어왔고 이 가운데 1백개 업체는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어섰다. 지난해 르노삼성자동차가 출범했고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하게 되면 외자계의 파워는 더욱 증가한다. 토종 협력업체들은 이제 더 이상 국내대기업과 수직계열화체제에서 납품만하면 되는 '온실경영' 내지는 '천수답(天水畓)식 경영'에 안주할 수 없게 됐다. 르노삼성차가 내년 7월께 선보일 준중형 승용차 'SM3' 모델의 협력업체로 뽑힌 자동차 부품업체 카테크의 정병길 사장은 "완성차와 부품업체간 폐쇄적인 계열화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외자계 기업들로부터 자금 지원과 같은 혜택은 꿈도 꿀 수 없기 때문에 협력업체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글로벌 스탠더드' 충족시켜야 생존 =국내 최대 자동차 프레임 생산업체인 서진산업은 지난 99년 10월 세계적 자동차 부품업체인 미국 타워사에서 4천만달러를 투자받았다. 타워사는 지분 49%를 인수하는 것과 함께 재무와 기술담당 이사를 파견하는 조건을 내세웠다. 결국 지난해초 미국 교포 출신 기술담당 부사장과 재무담당 부사장이 부임했다. 단순한 자본 투자에 그치지 않고 서진산업을 자신들의 기준에 맞는 회사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전문가를 투입한 것이다. 외자계 기업들이 협력업체에 요구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는 투명한 회계와 같은 기업 경영의 기본적인 원칙들이다. 카테크의 정 사장은 "외자계 기업은 부품 공급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해 협력업체에 자동차 판매를 할당하는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며 "스스로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이는데 어떻게 이들의 요구를 따르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 세계 일류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 ="솔직히 중소기업으로서 세계적인 기업이 기대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는게 힘들었다. 하지만 최근 몇년새 국내 기업만을 상대하는 업체들에 비해 경쟁력이 크게 높아졌다고 자부한다"(볼보코리아 협력업체인 신흥정기의 엄도열 상무) 국내에 진출한 외자계 기업들은 대부분 전세계 기업을 대상으로 글로벌 소싱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자신들이 원하는 품질과 가격에 맞다면 어느 나라 기업에서든지 부품을 공급받겠다는 것이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유기천 연구위원은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국내 대기업들이 협력업체에 기술과 자금을 지원해 현재 수준으로 성장시킨 것은 평가받아야 한다"고 전제하고 "하지만 글로벌 경쟁체제에서 살아남으려면 세계 어느 기업과도 거래할 수 있는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부 오춘호.조일훈.장경영 기자 ohchoon@hankyung.com [ 한국언론재단 지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