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주연과 엑스트라 .. 김학원 <자민련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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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일단 패하면 아무리 찬란했던 과거라도 망할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으로 얼룩진다.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역사 드라마 '태조 왕건'을 보면서 사료(史料)와는 다른 궁예의 재평가에 대해 일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그것이 또 다른 역사 왜곡은 아닐지 노파심도 든다.
아무튼 패배한 자는 역사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따라서 지극히 적은 기록으로 그에 대한 모든 것이 평가되기 때문에 극과 극을 오갈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의 패자도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후세의 민초들 입에 오르내림으로써 드라마의 주연이 될 수 있다.
드라마에서 그들은 TV 화면 가득히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또 많은 대사를 할 수 있다.
승자인 왕건만이 아니라 패자인 궁예나 견훤도 많은 팬을 확보한다.
그들은 주연인 것이다.
그런데 철저히 외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드라마 내내 몇 초만 나오고 기껏 한두 줄 정도의 대사가 부여된다.
이들은 엑스트라다.
얼핏보면 역사는 주연들의 무대로 장식되고 기록도 주연들 위주로 남겨지는 것 같다.
그러나 엑스트라가 화면에 나오지 않고 주연들만 나오는 역사드라마를 생각해 보자.
그런 드라마가 재미있을까.
주연만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아니다.
엑스트라인 민초들도 비록 화려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민초들이 향하는 거대한 흐름에 편승하면 승자가 되고 거역하면 패자가 된다.
물론 영웅은 불리한 흐름을 반전시키는 경우도 있으나 그 바탕은 역시 민초다.
그래서 민심은 천심(天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대권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왕건드라마에 관한 내용이 일상대화 중에 많이 나온다.
주인공들의 활약상이 주류다.
그런데 이야기 도중에 불쑥 한마디 물어본다.
"고려군이 낙동강에 배치한 군사와 건너편 후백제군 중 어느 쪽이 더 많았지?"
제대로 대답을 들은 적은 별로 없다.
왜? 대답 대신 별 우라질 걸 다 묻는다는 표정이 대부분이니까.
그러나 민초들을 엑스트라라며 관심밖에 둬도 괜찮을까.